박용 논설위원
생산성이 떨어지는 근로자들이 고임금 일자리를 꿰차고 있으면 유능한 청년들이 ‘2류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현실 인식이다. KT는 노조를 설득해 2009년부터 1년간 6000여 명을 명예퇴직시켰다. 이 중 2500명에게는 재취업을 알선했다. 빈자리는 대졸(3000명)과 고졸(500명) 신입사원으로 채웠다. 일자리 순환이 일어나자 한 해 200∼300명씩이던 대졸 신입사원을 요즘 900∼1000명씩 뽑는다. 이 회장은 “비정한 일이긴 하지만 일자리 순환만이 젊은층에 좋은 일자리를 내줄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은 “정치 메커니즘은 역동적인 변화를 촉진하고 성장과 번영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 자유시장보다 비효율적이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현상유지의 횡포(Tyranny of the Status Quo)’ 때문이다”라고 일갈했다. 조직화된 노조가 사회의 가장 약자인 청년층을 상대로 ‘기득권의 횡포’를 부리면 세대 간 일자리 순환은 멈추고 젊은이들은 갈 곳을 잃는다. 무기력과 좌절에 빠진 청년들의 불만은 정부와 사회로 흐른다. 청년 2명 중 1명꼴로 일자리가 없는 그리스 아테네 도심의 시위가 이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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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선순환의 해법은 생산성 중심의 노동시장, 그리고 ‘일자리’보다 ‘사람’을 보호하는 고용의 ‘유연안전성(Flexicurity·Flexibility+Security)’에서 찾아야 한다. 기업이 생산성을 높여 경쟁하고 이 과정에서 낙오하는 근로자는 새 일자리로 옮겨가도록 실업급여, 재교육, 취업지원과 같은 탄탄한 고용 안전망을 갖추는 게 ‘일자리 강국’의 전제조건이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와 글로벌 컨설팅사인 모니터그룹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0개국을 대상으로 청년일자리창출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고용유연성과 안전성이 모두 떨어져 고용구조 경쟁력이 최하위였다. 반면 일자리 강국인 네덜란드 스위스 덴마크 등은 두 지표에서 고루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은 고용안전망이 부실하니 노조에 대놓고 고용유연성을 높이자는 얘기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다. 정치권이 기득권 노조의 눈치를 보며 현실에 눈을 감고, 정부는 나랏돈을 풀어 불안한 일자리를 양산해 취업률 수치를 높이는 데 열중하면 일자리 강국은 요원하다. 그리스의 한 언론인은 재난영화와 같은 그리스 국민의 삶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경제위기의) 밝은 면도 있다. 돈의 가치를 알게 됐다. 혁신의 가치도 잊지 않게 됐다. …사기, 부패, 거짓말과 존재하지 않던 돈을 세며 지냈던 시절이 지나자 ‘나쁜 배우’들이 누구인지를 비로소 알아보게 됐다.”
지금 한국에서는 대통령 후보들도 ‘나쁜 배우’가 아닌지 국민은 꿰뚫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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