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김상수 배영섭 잘해서 뿌듯”… “공 100개가 한계? 난 200개 넘게 던져”
장효조(1956∼2011)가 2010년 7월 24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현역 시절 못지않은 멋진 스윙으로 시타를 하고 있다. 1980년대 ‘안타제조기’로 불렸던 그는 삼성 스카우트를 맡았을 때 경북고 김상수를 발굴했고 2군 감독 시절에는 배영섭을 조련했다. 동아일보DB
#여기는 천국 스타디움
▽장효조=없네,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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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한 선수 말이야. 천국이라 그런가.
▽최=여기에서 그런 선수를 찾지 마세요. 아래 세상은 여전히 치열하잖아요.
▽장=삼성의 선두 질주 속에 롯데 SK 두산 KIA의 4강 경쟁이 치열하군. 그 와중에 최하위 한화는 김태균이 꿈의 4할에 도전하고 있어 대단해. 다른 타자들은 2% 부족하지만….(장효조는 프로 10년 동안 4번이나 수위타자에 올랐다. 통산 타율 0.331로 2위 양준혁(0.316)에 비해 0.015나 앞섰다. 타격이 만족스럽지 않은 날에는 호텔 방에서 방망이를 휘두른 악바리 정신 덕분이다.)
▽최=그건 그래요. 요즘 투수들은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자책점 3실점 이하)만 하면 만족하는 분위기예요. 또 공 100개가 한계 투구 수라는데 아무리 선발-불펜-마무리가 분업화됐다고 해도 경기를 책임진다는 생각을 가져야죠.(최동원은 1987년 5월 16일 해태(현 KIA)와의 사직경기에서 선동열과 연장 15회 던지며 2-2로 비겼다. 최동원은 209개,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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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1958∼2011)이 2001년 7월 1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올드스타전’에서 백두팀의 선발로 나서 역투하고 있다. 현역 시절 롯데의 에이스로 뛰었던 그는 1990년 삼성에서 은퇴한 뒤 한화 2군 감독을 지냈지만 친정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지 못한 걸 늘 아쉬워했다. 동아일보DB
▽최=한화 에이스 류현진은 올해 팀 타선의 지원을 못 받았지만 두둑한 배짱으로 정면승부를 한 덕분에 탈삼진 선두(5일 현재 166개)네요. 2006년 한화 투수코치 때 ‘빅 리그에서도 통할 재목’이라고 생각했죠.(최동원은 1981년 대륙간컵 대회에서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뒤 미국 프로야구 토론토와 서면계약까지 했지만 병역 문제 때문에 좌절됐다.)
▽장=나는 마지막에 친정팀에서 2군 감독을 했는데 동원이는 어때?
▽최=내 고향 롯데에서 지도자를 못한 건 아쉬움이 많죠. 세상에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도 있더라고요.(최동원은 한화 2군 감독을 했지만 롯데에선 끝내 지도자 생활을 하지 못했다.)
▽장=그래도 우리는 야구팬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고맙게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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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동영상= ‘무쇠팔’ 故 최동원 생전 투구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