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재배면적 35% 피해, 최악 흉년 우려… 농민 한숨
출수기를 앞두고 벼 이삭이 여물지 않고 하얗게 변하는 백수 피해가 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지산면 박동욱 씨(60)는 드넓게 펼쳐진 마을 앞 500ha의 마새들녘 벼들이 하얗게 말라죽어 가는 것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볼라벤과 덴빈 등 두 차례의 태풍이 휩쓸고 간 전남북 들녘에 백수 현상이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다. 백수 현상은 벼가 출수기(이삭이 패는 때)에 바람 등으로 크게 흔들리면 이삭의 수분이 빠져나가고 잎이 하얗게 변한 뒤 말라죽는 증세. 바람이 심하게 불면 벼의 정상 수정이 안 돼 알맹이 없는 쭉정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모를 일찍 심어 수정이 끝나고 목이 올라온 벼는 피해가 적지만 늦게 모내기를 한 중·만생종 벼와 보리 수확 후 모를 심은 이모작 논은 아직 수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센 바람을 맞아 수확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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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시 부량면에서 10ha의 벼농사를 짓는 정순기 씨(59)는 “벼 알갱이가 이미 쭉정이로 변했고 10월 중순 수확기의 벼처럼 색이 붉게 퇴색해 논에 나갈 맘이 나지 않는다”며 “1모작은 20%, 2모작은 80% 정도 수확량 감소가 예상돼 30여 년 벼농사에서 최악의 흉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곡창인 금만평야가 있는 김제시의 전체 벼 재배면적(2만1964ha)에서 35%가 넘는 7800ha에서 백수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김제 들녘에서도 보리와 이모작을 많이 하는 광활·진봉·부량·죽산면 지역이 특히 피해가 심했다. 특히 올봄 모 심는 시기에 가뭄으로 모내기가 늦어져 피해가 더 컸다. 여기에다 이번 태풍 볼라벤이 바람은 세고 비가 적어 벼 피해가 극심했다. 태풍이 와도 비가 같이 오거나 출수 이후에 오면 도복(벼 쓰러짐)은 돼도 백수 현상은 적게 발생하지만 이번 태풍은 상당수 벼가 수정이 되기 전에 온 데다 마른 태풍이어서 벼에 직접 타격을 입혔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1일 벼 백수 피해가 심각한 김제시 진봉면을 방문해 피해보고를 받고 현장을 둘러보며 “최대한 빨리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김제시 농업기술센터 쌀담당자 정용신 씨는 “벼 백수 현상은 과일의 낙과와 비슷한 것으로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 벼를 수확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이번 주 안에 정확한 피해 상황을 조사해 대책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릴레이 태풍으로 광주 전남북 지역에서는 10명이 숨지고 3000억 원이 넘는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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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주택 948건, 가로수 701건, 간판 604건 등 총 3905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고 비닐하우스 4372동(면적 473ha)이 피해를 봤다. 전남지역은 낙과 피해 면적만 7068ha인 가운데 총 농경지 피해 면적이 6만3637ha에 달했다. 현재까지 양식장 피해와 어구 파손 등 수산시설 피해액이 200억 원으로 나타났지만 정전에 따른 완도와 진도 등 섬지역 양식장 피해액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피해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6, 7일로 예정된 중앙합동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전남도 피해액만 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