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나라라고 사람들까지 꽉 막힌 건 아냐
2012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최고 작품상을 수상한 ‘굿모닝 예루살렘’의 일부. 길찾기 제공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상황을 생생히 다룬 르포르타주 만화 ‘굿모닝 예루살렘’의 작가 기 들릴. 그는 특유의 유머와 호기심을 살려 유적지 탐방, 육아와 장보기, 자살폭탄테러, 복잡한 공항 보안검색 등 예루살렘 사람들의 일상을 만화에 담았다. 길찾기 제공
프랑스 만화가 기 들릴(46)은 자타가 공인하는 제3세계 탐방 르포르타주 만화가다. ‘평양’(2003), ‘굿모닝 버마’(2007)에 이어 최근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굿모닝 예루살렘’은 국제구호단체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근무하는 아내를 따라 1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체류했던 경험담을 그린 작품. 세계 최대 출판만화축제인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올해 최고 작품상인 황금야수상을 수상했다.
들릴은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머물렀던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들려줄 수 있는 방법이 만화였다”고 말했다. 그의 만화는 엄숙한 메시지엔 관심이 없다. “그저 재미와 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는 것이 작품의 목표”라고 한다. 분리장벽 아래서 크로키(단시간에 그리는 스케치)를 하다 폭탄 소리에 놀랐던 경험, 각각 금, 토, 일요일에 문을 닫는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 상점 적응기 등은 외신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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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일부에서 북한을 왜곡된 이미지로 그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들릴은 “평양은 마치 1953년으로 돌아가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었다”면서 “전형적인 서구의 시각으로 배우고 자랐기 때문에 내 만화가 100% 객관적일 순 없다”고 이를 수긍했다. 유령도시로 치부하던 외신보도와는 달리 평양은 분주히 오가는 행인들, 도로를 지나다니는 자동차들, 깨끗하게 청소된 거리가 있었다. 그가 더욱 르포르타주 만화작업에 열을 올리게 된 계기다.
최근 북한 김정일의 사망, 미얀마의 부분적 민주화 등 그가 다녀온 나라들이 차례로 큰 변화를 겪었다. 그는 “아웅산 수치가 외국을 방문한다든가 하는 버마의 변화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북한은 김정은이라는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했음에도 여전히 같은 체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프랑스 만화계는 지난 15년간 ‘아이들을 위한 만화’에서 어른 독자를 위한 만화 제작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에 앞장서는 만화가 중 하나다. “아직도 대다수 유럽인들은 버마나 북한의 실상에 대해 잘 모릅니다. 어른들이 좀 더 쉬운 방법으로 정보를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만화만을 만들 의무는 없어요.”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