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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조성하]내 나라 여행이 우선이다

입력 | 2012-08-08 03:00:00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대한민국의 모든 경제지표는 붉은색이었다. 그런 만큼 대통령에게 매일 해야 하는 보고가 청와대 비서실로서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어디든 예외는 있는 법. 어려운 국정 상황에서도 이 분야만큼은 매일 청색 지표로 도배된 보고서를 올릴 수 있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도 이 수치를 볼 때만큼은 찌푸린 인상을 폈다. 그건 다름 아닌 관광분야로 그 핵심은 ‘여행수지’였다.

여행수지란 아웃바운드(한국인의 출국)로 발생한 외화 지출과 인바운드(외국인의 입국)로 벌어들인 외화 수입을 비교한 수치다. 1997년까지만 해도 여행수지는 적자(11억5000만 달러)였다. 그러던 게 이듬해 돌연 36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지출이 66%나 줄어들고 수입은 13.5% 늘어난 덕이었다. 이런 돌변을 불러온 결정적인 변수는 원화 가치 하락으로 종전의 두 배로 급등한 환율이었다. 그게 일본인에겐 절호의 찬스였다. 한국 전체가 50% 할인세일을 벌이는 셈이었으니. 때를 놓칠세라 몰려온 일본인들은 너도나도 지갑을 활짝 열었다.

지금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여행수지는 유턴해 적자다. 1301만 명의 출국자에 비해 외국인 방문객은 1000만 명에도 못 미친 탓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청신호는 발견된다. 여행지출보다 여행수입의 성장률이 더 커서다. 2005년 이후엔 줄곧 증가세다. 이건 꾸준한 인바운드 증가에 힘입은 것으로 그 핵심엔 역시 ‘쇼핑’이 있다.

지난해 방한 외국인을 분석한 자료(한국문화관광연구원)를 보면 놀랍다. 한국을 선택한 결정 요인도 쇼핑(76.8%), 한국 방문 중 주요 활동도 쇼핑(76%), 가장 좋았던 곳 1, 2위도 서울 명동(33.7%)과 동대문시장(16.5%) 등 쇼핑가다. 여행만족도(5점 만점)를 조사하는 10개 항목 중 4점 이상을 준 두 항목 중 하나도 쇼핑이다. 평균지출액(1343.4달러) 중 가장 많이 쓴 항목도 쇼핑(522.7달러, 39% 차지)인데 숙박비(407.1달러)보다도 많았다.

쇼핑이 효자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거기엔 함정도 있다. 환율 변수다. 원화 가치가 오르면, 즉 원화 환율이 낮아지면 환율 효과는 사라진다. 그러면 인바운드 감소로 쇼핑 매출은 줄게 된다. 이미 겪어본 일이다. 따라서 쇼핑에 다걸기(올인)하는 건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3년간 수도권에 호텔 3만8000실을 공급하는 내용 같은 정부의 호텔 정책은 우려스럽다. 호텔 확충이 당장에 필요하긴 해도 쇼핑 목적으로 서울 등 수도권을 선호하는 외국인만 겨냥한 수도권 중심의 계획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 포괄적으로 보면 숙박시설 확충이 보다 절실한 곳은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이 아니다. 전국의 각 지방이다. 그 숙박시설의 1차 고객도 외국인이 아니다. 국민이다. 이건 관광의 교과서적인 사실이다. 관광 선진국을 보라. 관광 매출의 70%는 ‘내 나라 여행’에서 온다. 인바운드는 나머지 30% 정도다.

그런데 우린 어떤가. 정작 국민은 내 나라를 외면한다. 아니 포기한다. 낡은 시설, 빈약한 볼거리, 중저가 숙박시설의 부재 등 열악한 인프라 탓이다. 그러니 관광으로 외화를 벌자면 국민 관광부터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전국에 국민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할 만한 중저가 숙박시설부터 확충하는 게 순서다. 내수 기반 없는 관광 인프라 구축은 공염불이다. 어느 누구도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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