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스포츠레저부 차장
그때 노민상 당시 대표팀 감독이 답을 대신했다. “박태환은 이제 스무 살이다. 국민적인 관심에 얼마나 심적 부담이 크겠느냐.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니 질책보다는 격려를 해줬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박태환을 발굴해 키운 스승의 말 한마디에 더는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노 감독은 말은 안 했지만 ‘선수도 사람이다. 어떻게 훈련만 하고 사느냐. 박태환은 훈련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라고 항변하는 듯했다.
당시 박태환은 로마에서 전 종목 결선 진출 좌절이란 부진한 성적을 내고 돌아왔다. 일부 언론은 ‘로마 참사’라고 대서특필했고 국민들도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박태환에게 로마 악몽은 실패가 아니었다. 인간 박태환이 성장하기 위해 겪어야 할 성장통이었다.
스포츠심리학에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분석한 결과 올림픽 이듬해에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간절히 원한 것을 얻은 선수들이 ‘꼭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하나’란 회의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새로운 목표를 정하거나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즐겨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경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잊혀지게 된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박태환은 수영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박태환은 자유형 400m 예선에서 조 1위를 하고도 어이없는 실격 판정을 받았다. 올림픽 2연패를 위해 4년을 준비했고 ‘세계신기록도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박태환에게 실격 판정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실격 판정 번복이란 변수가 없었다면 금메달도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박태환은 결선에서 최선을 다해 레이스를 펼쳤고 라이벌인 중국의 쑨양에 이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환은 자유형 200m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목표로 한 금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박태환은 “영광스러운 올림픽 메달을 걸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날아간 금메달은 벌써 잊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박태환은 “수영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이번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일찌감치 4년 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출전할 뜻을 비쳤다.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해 한국 수영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목표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던 ‘마린 보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차장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