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이 있는 정원’전에 나온 한국화가 송영방 씨의 매화도. 환기미술관 제공
선인들은 매화를 ‘설중군자(雪中君子)’라 불렀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가장 일찍 피는 꽃을 절개와 고매함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에 가면 때아닌 매화꽃이 지천이다. 물론 실제 꽃이 아닌, 그림과 글씨, 시를 통해 만나는 매화다.
미술관이 개관 20주년 기념전으로 마련한 ‘매화꽃이 있는 정원’전은 매화를 주제로 옛 선비들과 오늘의 예술가들이 소통하는 자리다. 조선 중기 선비로 5만 원권에 인쇄된 매화 그림의 화가인 어몽룡의 ‘월매도’가 있는가 하면, 바로 옆 전시실에서는 매화를 즐겨 그렸던 김환기의 유화와 드로잉을 접할 수 있는 전시다. 9월 16일까지. 02-391-7701
도심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또 다른 전시가 있다. 서울 중구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눈과 겨울 풍경을 주제로 한 ‘White Summer’전이다. 사진 분야 구본창 권부문 강홍구 이정록 임택 씨, 화가 석철주 공성훈 씨 등 12명이 참여했다. 8월 12일까지. 02-310-1924
환기미술관의 전시에선 조선 시대와 근대기 매화를 소재로 한 그림과 글씨부터 젊은 작가들이 다양한 매체로 해석한 매화까지 과거와 현대의 시서화가 한데 어우러진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풍경에 자리한 집에서 글 읽는 선비를 그린 전기의 ‘매화초옥도’를 비롯해 오달제 이공우 허련의 매화도를 볼 수 있다. 김환기는 광복 전후에서 1963년 뉴욕에 가기 전까지 달이나 달항아리와 연계한 매화 그림을 종종 그렸다. 문인화로 사랑받은 묵매도를 현대적으로 접근한 그의 발상을 엿볼 수 있는 스케치들이 흥미롭다.
송영방 문봉선 이동원 등 세대를 달리하는 한국화가들의 3인 3색 매화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이이남 씨는 장승업의 호방한 매화도를 기반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달이 움직이고 꽃이 피어나는 미디어아트를 선보였다. 팝콘으로 매화꽃을 표현한 구성연 씨의 정물 사진 시리즈도 시선을 끈다.
○ 하얀 눈에 취하다
이정록 씨의 사진작품 생명의 나무’. 신세계갤러리 제공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