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평안남도 개천에 있는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난 신동혁 씨(31)가 세미나 연사로 나왔다. 지난달 29일 출간한 ‘14호 수용소 탈출(Escape from Camp14)’의 저자 블레인 하든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도 동석했다. 책 주인공인 탈북자 신 씨는 모범수였던 부모의 ‘표창 결혼’으로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그는 “수용소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면서 변변한 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북한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과 슬픈 가족사를 담담하게 증언했다. 2005년 탈북한 신 씨는 4년 전 한국에서 북한 수용소 실태를 고발하는 책을 직접 펴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실패작’으로 끝났다고 했다. 국내에서 기껏 몇백 권 팔린 게 고작이었다는 것이다. 신 씨는 “그동안 아무리 말하고 얘기해도 북한 수용소는 변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북한은 더 승승장구했고 더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하든 씨가 펴낸 그의 책은 지금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신 씨는 “내가 유명해졌다고 얘기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연예인이라면 행복하겠지만 나에겐 피눈물 나는 스토리”라며 “국제사회가 큰 소리를 내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한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4년 동안 탈북자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달라고 피눈물 나는 투쟁을 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탈북자 얘기만 꺼내면 내 입을 틀어막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국에선 이제 기대할 것이 없다. 유엔에서 탈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 교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가 실패로 끝난 14일자 사설에서 “미국은 북한 핵 문제에 집착하면서 인권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고 한국에선 북한 정치범수용소가 좌파 우파 정치인들의 정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며 북한 인권 문제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사각지대였음을 지적했다.
이처럼 미국에선 탈북자 인권 문제가 새삼 재조명받고 있지만 국내에선 오히려 관심이 시들해질 조짐을 보여 안타깝다. 신 씨와 송 씨가 증언한 북한 수용소의 비참한 실태와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든 이들의 탈북 스토리가 고통 받는 수많은 탈북자에게 작은 힘이라도 줄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 되길 기원한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