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여행
노란색 기생초와 보랏빛 라벤더 꽃이 어우러진 일본 홋카이도의 정원.
○ 꽃 테마 여행을 떠나보자
여행은 현대인들의 대표적 여가활동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여행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 ‘내 차 시대’ 이후가 아닐까 싶다. 그때는 온 산의 계곡이 삼겹살 냄새로 진동했다. 우리 조상들처럼 자연을 배려하지 않고, 그저 자신만 즐기려는 탐닉이 가져온 결과이리라. 이후 역사유적 답사 기행과 휴양림 같은 곳에 머무는 체류 휴양형 여행이 붐을 이루기도 했다. 최근에는 제주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진 걷기 여행이나 맛 기행으로 대표되는 테마 여행이 대세를 이루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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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꽃 여행의 시작이다. 나는 지난해 3월의 남녘 여행을 잊지 못한다. 구례의 산수유를 시작으로 섬진강을 따라 피어난 광양과 하동의 매화, 그리고 순천과 여수의 햇살 아래 피어난 수많은 봄꽃을 만나고 왔다. 구례의 산수유는 지리산 잔설 속에서 피어난 생명의 위대함이었다. 순천 낙안읍성의 연분홍 살구꽃은 온대지방 잎떨기나무의 봄철 환희였다. 한편 여수의 동백꽃은 아열대풍 늘푸른나무의 수줍은 정열을 보여줬다. 짧은 이틀의 일정으로 이처럼 봄의 연대기적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 조경(造景)과 차경(借景)
4월의 왕벚나무는 말해 무엇 하리오. 벚꽃놀이는 우리네 봄꽃축제의 절정이다. 한일 양국민들이 왕벚나무를 좋아하는 마음은 축구의 한일전 못지않게 뜨겁고 경쟁적이다. 다만 유명한 일본 우에노 공원의 왕벚나무(일본명 소메이요시노) 꽃구경이 낙화의 애잔함이 스며있는 환희를 즐긴다는 점 같은 게 다를 뿐이다. 사족으로 독도는 우리 땅이듯이,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이 말이 사족인 이유는 꽃을 즐기는 마음에는 국적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5월에는 한라산을 시작으로 북상하는 산철쭉 축제가 유명한 산의 정상에서 열린다. 이런 꽃 여행이 좋기는 하지만, 자연환경에 부담이 된다는 점이 걸린다. 더 확대되지는 말고 자연에 대한 배려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꽃 여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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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매력적인 관광자원이란 한번 찾아온 여행객을 다시 부르는 힘이 강하다. 벚꽃이나 국화 같은 단일 식물의 식재에만 너무 치중하면 자칫 단조로움이 강해질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꽃 여행지에는 인위적인 디자인과 변형이 가능한 정원의 화려함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젠 우리도 외국처럼 조경에 의한 꽃 여행지를 만들어 본다면 어떨까. 유사한 환경인 일본 홋카이도를 참고해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인 평창의 대관령 등 고랭지에 여름 초화 위주의 꽃 여행지를 개발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꽃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오전 시간을 활용하는 게 낫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늦은 아침식사 후 출발한 사람들이 도착하는 오후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리기 때문이다. 꽃 여행의 목적은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지 사람 구경을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아침의 부드러운 햇살과 맑은 공기에 빛나는 꽃들을 만나는 재미가 오후에 꽃을 볼 때보다 더 쏠쏠하다.
서정남 농학박사(농림수산식품부 국립종자원) suhjn@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