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후쿠시마 재앙 부른 전문가 오류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원자력발전은 대표적인 예지만 그 외에도 산업화로 인한 이산화탄소(CO2)의 발생, 유전자 조작을 이용한 식품산업의 발전 등 지구 생태계와 인류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여러 요소가 있다. 과학기술자들은 기술개발 과정에서 위험성을 줄이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듯 100% 안전이라는 것은 누구도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문명의 혜택을 포기하는 것은 분명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지구 온난화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동안 산업화가 인류 삶의 질과 복지 향상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자동차가 내뿜는 오염가스 때문에 그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듯이 인류는 결국 과학문명의 유용성과 부작용 사이의 경중을 따져 선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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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자 거짓정보 경계해야
쌍방소통 시대에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려면, 과학기술자나 일반인이 갖추어야 할 금도(襟度)가 있다. 우선 과학기술자들은 전문가의 오만에서 벗어나 국민의 눈높이로 내려와야 한다. 과거처럼 전문가라는 권위를 이용해 일방적인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 일반인들도 인터넷에서 얻은 조각 지식으로 근거 없는 편견을 형성하지 말고 선입견 없이 진실에 다가간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생업에 바쁜 일반인들이 사회의 중요한 모든 이슈를 이해하고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부 극단주의자가 퍼뜨리는 거짓 정보나 감정적 조작을 분간하고 자신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이성적인 판단을 할 만한 소양을 갖추는 것은 필요하다. 물론 전문가들은 이슈의 핵심 쟁점을 걸러내고 객관적인 판단 자료를 제공해 일반인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도와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는 매우 다양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처지에 따라 서로 의견이 다르고 심지어 사실관계조차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우리는 혼돈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평론가 아나톨 칼레츠키는 최근 “세계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4.0이 필요하다”면서 ‘오만한 독단’을 배격하고 ‘겸허한 회의주의’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즉 사회의 의사결정 단계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생각도 포용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한국 사회는 이러한 포용력보다는 오만한 독단이 득세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공천도 어느 당을 막론하고 과학기술자,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다양한 분야를 배려하려는 자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와 다름없이 힘의 논리와 분파주의, 기득권 지킴의 싸움이 지배하고 있다.
이래서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기 어렵다. 비교적 사실적 인과관계의 규명이 용이한 과학기술에 관한 이슈부터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다양한 관점을 배려하면서 합리적인 공동체 합의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면 너무 비현실적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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