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민 정치부
기자는 8일 저녁 서울 모처에서 만난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책임 있는 분이 ‘고승덕 의원과 일면식도 없다’고 해명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무책임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였던 고명진 씨는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한 듯 초췌한 모습이었고 목소리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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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돌려받은 돈은 개인적으로 썼고 ‘윗선’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해 왔지만 최근 검찰 비공개 조사에서 “돈을 돌려받은 사실을 김효재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보고했다”고 시인했다.
고 씨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온 A4 용지 한 장 분량의 ‘고백의 글’을 꺼냈다. “죄 없는 캠프 직원들이 불안과 초조의 나날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려 한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조사를 받고 있는 다른 실무진도 진실을 다 말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3일 이 사건이 처음 불거진 이후 고 씨를 비롯한 실무진 4명은 수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정작 캠프의 최고 책임자였던 박 의장과 김 수석은 ‘모르쇠’로 일관한 채 자기 살길 찾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검찰 조사를 앞둔 실무진에게 허위 진술까지 강요했다고 한다. 박 의장은 국회 대변인에게 자신의 의장직 사퇴 회견문을 대독시키는 ‘무례(無禮)’까지 범했다. 김 수석도 10일 공식 사의를 밝히기는 했지만 ‘청와대’라는 권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한 줌의 권력(기득권)이 손아귀에서 다 빠져나갈 때까지 스스로 놓지 않는 우리나라 보수 정치인들을 보면 박 의장에게만 돌을 던질 일도 아니다. 4·11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지도부는 꺼져버린 자진 불출마 불씨를 되살려 보려 후보 공모 기간을 늘렸지만 정작 중진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애써 모른 척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들도 ‘양지’ 지역구만을 기웃거린다. 18대 총선에서 152석을 얻었던 정당이 4년 만에 ‘100석’을 걱정할 처지에 놓였는데도 말이다. 그저 내가 속한 조직이, 혹은 부하가 어떻게 되든 나만 살고 보자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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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정치부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