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경제부 차장
통큰 TV와 1년여 전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통큰 치킨은 할인점 기획상품이란 점에서 태생이 같다. 하지만 둘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차이가 크다.
2010년 말 롯데마트는 한 마리에 5000원짜리 통큰 치킨을 내놔 관심을 끌다가 일주일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골목상권의 영세 자영업자를 죽인다”는 프랜차이즈 업계의 비판에 청와대 당국자까지 거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할인점들이 내놓은 통큰 TV에 대해선 어떤 비난이나 반발도 찾아볼 수 없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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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여다보면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통큰 치킨이 계속 판매됐다고 가정해 보자. 많은 치킨집이 문을 닫아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생겼을 수 있다. 하지만 닭을 조리하기 위해 할인점은 누군가를 채용했을 것이다. 당시 할인점 주장대로 국산 닭만 썼다면 국내 양계농가가 사람을 더 고용했을 수도 있다. 없어진 일자리 대신 국내 어딘가에 다른 일자리가 생겼을 것이란 뜻이다. 살아남은 치킨집은 싸고 질 좋은 제품을 공급할 경쟁력을 얻었을 것이다.
통큰 TV는 다르다. 상당수 제품이 대만산 패널을 쓰며 인건비가 싼 중국, 대만에서 조립된다. 소비자로선 반길 일이지만 이 제품이 많이 팔리면 LCD 패널을 생산하거나 TV를 조립하는 국내 근로자 중 누군가는 앞으로 일자리를 잃는다. 그 대신 중국, 대만 근로자가 일자리를 얻는다. 한국 가전업체도 손놓고 당하진 않을 모양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초 생산 개시를 목표로 중국 쑤저우에 LCD 패널 공장을 세우고 있다. 여기서 생산한 싼 패널로 저가 경쟁에 뛰어들 수도 있다. 생산은 물론 중국 노동자가 하겠지만.
그렇다면 통큰 치킨과 통큰 TV 중 어느 쪽을 더 경계해야 할까. 일자리 창출, 청년실업 해소를 목표로 내건 정치인이라면 통큰 TV가 미칠 영향을 더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표가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나온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자영업자의 생존을 얘기하면 표가 생겨도 대기업 때리기가 ‘국민적 스포츠’가 되다시피 한 요즘 삼성전자, LG전자를 걱정해주다간 표 잃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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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