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승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석유 확보는 기술적인 ‘땅속(under ground)’ 환경과 정치적인 ‘땅밖(above ground)’ 환경에 좌우된다. 중동지역은 아직도 ‘쉬운 석유(easy oil)’가 풍부해 개발비용이 배럴당 10달러 이하일 만큼 땅속 환경이 양호하다. 오죽하면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걷다 보면 석유가 뿜어져 나온다거나 기름 위에 땅이 떠 있다는 우스개가 있겠는가. 하지만 땅밖 환경은 중동국가들이 1970년대 자원 통제를 시작하면서 외국기업들을 내쫓은 이후 아직까지 진출이 녹록지 않다. 반면에 땅속 환경이 열악한 캐나다 오일샌드, 셰일오일과 같은 비(非)전통석유는 땅밖 환경이 양호하다. 이런 아이러니로 인해 현재 많은 석유개발 기업들은 ‘쉽지만 못 가는’ 중동 대신 ‘어렵지만 갈 수 있는’ 비전통석유 개발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나서고 있다.
수년째 이어진 고유가는 석유에 대한 정치의 영향력 확대라는 구도를 더욱 강화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오일달러에 맛을 들인 산유국들은 철저히 ‘갑’의 위치에 군림하면서 자원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 변경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관련 인프라 건설 등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메이저 석유기업들은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여전히 큰손 역할을 하고 있고, 중국은 엄청난 규모의 경제원조를 제공하면서 세계 석유자원을 선점하려 하고 있다. 이제 시장 논리에 입각한 석유의 확보는 더욱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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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개발을 통한 에너지 안보 확보에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자원민족주의를 주창하는 여러 산유국과의 유대관계 강화를 위한 노력이 꾸준히 진행돼야 한다. 석유공사를 비롯한 우리나라 석유개발 기업들이 ‘땅속’에서는 물론이고 ‘땅밖’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금융적 지원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의 공격적인 석유 확보정책은 한때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결국 성공적인 전략으로 드러났다. 중국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석유개발은 산꼭대기에서 해변의 모래알을 분석하는 것과 같이 어려운 분야다. 과거 우리나라는 석유개발 기술과 경험이 크게 부족했으나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수백 개의 석유개발 사업에 참여할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글로벌 수준에는 여전히 미흡한 게 사실이다. 석유개발이 우리나라에서 든든한 산업의 하나로 성장하고 이를 통해 우리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에너지 안보를 튼튼히 하려면 정부와 기업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 우리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여러 정치적 일정을 모두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석유개발에 대한 범정부적 지원과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 확대가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조한승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