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cket List Tour | 동아일보―삼성카드 공동 기획
‘영롱한 별빛과 달빛을 맑은 아침이슬에 풀어 천사의 손으로 빚은 밤하늘의 향수’ 오로라가 밤 1시 캐나다의 북위 62도 옐로나이프 근방 오로라빌리지 위 북쪽하늘을 물들이며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다. 옐로나이프에서는 11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늦은 밤에 오로라가 관측된다.
퍼스트란 단어는 캐나다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First Nation(선주민 부족)’을 뜻해서다. ‘선주민’은 15세기 유럽인 당도 전부터 살아온 원주민―우리가 ‘인디언’이라고 불러온―이다. 이들은 북극권(북위 66도 이북)과 거기 인접한 영구동토 툰드라 지대의 주인인 이누이트다. 그 땅은 현재 옐로나이프가 주도인 노스웨스트, 그 동편의 누나부트 등 두 개의 준주(準州). 그 면적은 남한의 110배나 되고 캐나다의 3분의 1이나 된다.
오로라빌리지의 썰매견 열 마리가 관광객을 태우고 숲을 향해 눈밭을 질주하고 있다. 오로라투어 중 낮에 꽁꽁 언 호수에서 즐기는 겨울액티비티 가운데 하나다.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관광이 시작된 건 1991년으로 고객은 90%가 일본인. 10년 전엔 한 해 8000명을 헤아렸다. 그동안 줄긴 했어도 대세는 여전하다. 그날 내가 탄 비행기에도 13명이나 됐다. 예정된 옐로나이프 취재 일정은 3박. 사흘이면 오로라 관측 확률 95%. 그런데도 조바심은 가시지 않았다. 흐리거나 눈이라도 내리면 허탕을 쳐서인데 그래서 오로라 관측은 피곤해도 도착 즉시 개시된다.
옐로나이프 주택가에 무리지어 서식하는 뇌조. 갈색 깃털이 한겨울이면 이렇듯 순백으로 바뀌고 발등까지 덮는다.
오후 11시 반. 버스에 올라 오로라 빌리지로 향했다. 30분 후. 옐로나이프 북동편 오로라 호수에 도착했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엔 수십 명이 의자에 앉아 말없이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호반엔 크고 작은 티피(삼각뿔 형태의 선주민 전통가옥으로, 둘러 세운 장대 15개에 캔버스 천을 두른 텐트) 7개가 불을 밝힌 채 서 있었고 주변에 건물 4채도 보였다.
늑대처럼 우는 개 수십 마리의 울음소리가 호수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썰매견의 견사다. 나를 안내한 박수진 씨의 말. “선주민들 말로는 개들이 저렇게 울면 오로라가 나타난다고 해요.” 일본 유학 중 취업해 여기 왔다는 그녀는 오로라 빌리지의 유일한 한국인 가이드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오후 4시반 옐로나이프의 다운타운. 외출 시 두꺼운 외투와 모자, 장갑, 방한화는 필수다.
이틀째 아침. 10시쯤 브런치(아침 겸 점심)로 식사를 마친 뒤 시내투어에 나섰다. 10년 새 옐로나이프도 많이 변했다. 타운 중심엔 높은 건물―그래봐야 10층 이하―도 많이 보였다. 슈퍼마켓도 대형으로 바뀌었다. 주민 수도 2000명 늘어 2만 명. 안 변한 것도 있었다. 스쿨버스를 이용한 관광, 현재 기온을 숫자로 보여주는 프랭클린 애비뉴의 거리 전광판, 북극곰 모양의 자동차번호판, 고철로 변한 시내 콘 금광의 타워, 다이아몬드 더스트(추운 지방에서 겨울 오전에 볼 수 있는 대기 현상으로 땅에 쌓인 눈의 결정이 아침 햇볕에 데워진 공기에 실려 공중부양하며 반사시킨 햇빛으로 반짝거리는 것), 변함없는 강추위와 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주민의 밝은 표정….
옐로나이프에 서양인이 당도한 건 1770년의 일이다. 선주민으로부터 여우모피를 사들이기 위해서였는데 옐로나이프란 이름은 그때 붙여졌다. 선주민의 농기구가 구리여서다. 다른 설도 있다. 그건 금과 관련 있다. 이곳은 1935년 골드러시로 시작된 붐타운으로 금광 두 개(1935∼1993년)가 있었다. 초기 금광에선 다이너마이트 분말상자를 뜯을 때 불꽃이 튀는 것을 막느라 구리칼(옐로나이프)을 썼다고 한다.
옐로나이프는 그레이트슬레이브 호수 주변의 타운 8개 중 하나다. 이 호수는 거대(480×190km)하다. 세계에서 9번째, 캐나다에서 2번째며 수심(614m)은 북미 최고다. 11월부터 5월까지 동결(두께 1.2∼1.8m)하는데 그러면 그 위로 ‘아이스로드(얼음길)’가 나고 거길 24t 대형 트레일러가 쌩쌩 오간다. 호수엔 수상가옥도 있다. 한겨울엔 빙상가옥으로 변한다. 금광은 1993년 폐쇄됐다. 이제 남은 유일한 산업은 310km 동북방의 에타키 다이아몬드 광산뿐. 주민(2만 명)도 40%를 차지하는 공무원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젊은 광산 노동자다. 그래서 주민 평균 연령은 34.7세이고 25%가 18세 이하다. 봄에 임신부가 부쩍 늘어나는 건 이곳만의 특별한 현상이다. 밤이 스무 시간을 넘나드는 북위 62도 옐로나이프의 긴 겨울에 대다수 주민이 30대인 만큼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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