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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최은배 판사, 법관 독립성 남용했다

입력 | 2011-12-13 20:00:00


배인준 주필

헌법이 정한 기본권을 누구나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경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게 한 것도 헌법이다. 공무원은 국가로부터 신분보장을 받는 대신 기본권 일부를 제한받는다.

입법권 침해, 실정법을 휴지로

정치적 영향을 받으면 업무가 많이 훼손될 소지가 있는 공무원은 다른 공무원보다 정치적 중립을 더 엄하게 요구받는다. 군(軍)이나 수사 재판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그렇다. 요즘 일부 판사의 재판과 언동은 헌법이 정한 독립성과 신분보장의 특권을 남용하고, 법치 민주주의에 상처를 내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인천지법 최은배 부장판사는 ‘민노당에 불법 후원금을 낸 전교조 교사(공무원)를 실정법(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해서 징계하는 것은 헌법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다’ ‘같은 행위라도 정부에 반대하는 정당에 후원금을 납부하는 것은 정권 장악 정당에 내는 것과 달리 취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판사가 실정법의 효력을 무력화(無力化)시키는 판결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토대인 ‘법의 지배’를 흔드는 탈선이다. 실정법의 위헌 여부는 개개 판사가 판단할 일이 아니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할 영역이다.

공무원의 실정법 위반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은 그 공무원이 속한 기관에서의 징계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포함한다. 법 위반을 징계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징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최 판사는 실정법을 무시하고, 임의로 독자적인 입법(立法)을 한 셈인데 이는 입법부의 법률 제정권을 침해한 것으로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월권이다. 입법권은 최 판사를 포함한 사법부에 있지 않고, 국회에 있다.

최 판사는 양심에 따른 판결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헌법 103조 ‘양심에 따른 재판’의 양심은 헌법 19조 ‘양심의 자유’의 양심과는 다르다. 헌법 103조의 양심은 판사마다 천차만별인 개인적 양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사사로운 선입관을 배척하고 공평무사한 결론을 내리는 직업적 기능적 양심을 말한다. 헌법과 법률이 자신의 양심과 다를 때는 법을 따르는 게 판사의 의무다.

‘야당에 불법으로 후원금을 줬더라도 여당에 주는 것과는 달리 너그럽게 봐줘야 한다’는 식의 판결도 황당하다. 어느 민주국가에 이런 법리(法理)가 있는가. 여기서도 최 판사는 실정법을 적용해야 할 판사의 의무를 위반했고, 자신에게만 통하는 입법 활동을 했다. 여야가 바뀌는 것도, 민노당 의석이 적은 것도 민의(民意)가 결정지어준 자유민주보통선거의 결과다. 최 판사는 법관의 독립성을 악용해 정치적으로 종북(從北)정당을 비호한다는 의심까지 살 만하다.

대법원장 시험하는 운동권 행태

그의 판결은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 것으로 ‘법관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법관윤리강령에 저촉되고, 법관징계법 상의 징계사유에 해당한다. 대법원이 징계하지 않는다면 국회가 탄핵에 나서야 할 사안이다.

최 판사는 앞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이…,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이라는 글을 올려 법관의 품위를 떨어뜨렸다.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인 2009년의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직무 안팎을 불문하고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동은 징계 사유다. 일부 인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발언해놓고 물의가 빚어지면 ‘그곳은 사적 공간’이라고 하는데 이는 영악하지만 비겁하다.

최 판사는 사법부 내의 이념적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1988년에 결성된 이 연구회는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흔드는 데 앞장섰고, 자신들에게 호의적이던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는 내놓고 이념 편향적 판결을 했다. 그리고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초기인 요즘, 운동권 방식으로 양 대법원장을 시험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 광우병 시위세력이 대통령을 흔들던 모습이 연상된다.

최 판사처럼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일부 386세대 법관은 친구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는 동안 고시공부만 한 것에 대해 부채의식(負債意識)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질풍노도 시대에 고시 책에 머리를 파묻었다는 ‘빚 아닌 빚’을 갚기 위해 뒤늦게 낡은 좌파이념에 편승하거나 머리로만 배운 추상적 가치에 매달리는 판사가 있다면 국가사회를 위해 다행일까, 불행일까.

정의의 여신은 로마어로 유스티치아라고 부른다. 유스티치아는 영어 Justice(정의)의 어원이 됐다. 정의의 여신상은 보통 안대로 눈을 가리고 오른손에 칼, 왼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오직 법에 의해서만 저울처럼 공정하고 칼처럼 냉정한 판결을 내리라는 뜻이다. 그게 삼권 중 사법에 주어진 역할이다. 법관들이여, 판사의 길을 다시 한번 성찰해보라.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