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목일 수필가·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내 촛불은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 용기, 미소, 노래, 희망, 온정의 빛이 돼 주었던가. 자신만의 이익과 앞일을 위해 달려온 세월이건만, 촛불은 소리 없이 타 들어가 난쟁이처럼 돼 버렸다.
12월이면 시간이 지나는 초침 소리가 들리고, 심장의 박동이 느껴진다. 나무들은 아름다움으로 채색했던 꽃과 단풍을 지우고 벌거숭이로 돌아간다. 혹독한 추위와 고독을 견뎌낼 의지를 다짐하는 순간이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두 형제는 논산훈련소에 입대하여 2년간의 복무를 마쳤다. 시드니로 돌아간 두 형제는 아버지 앞에 거수경례를 하며 ‘제대 신고’를 했고, 세 부자(父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고 한참 동안 울었다고 했다. 일생에 있어서 가장 뿌듯하고 조국이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일행들은 박수를 치며 안내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세 부자가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였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이면 이런 흐뭇한 일을 떠올리면서 옛 친구와 차를 마시고 싶다. 정신없이 달려가던 내 삶의 질주는 인생을 위한 바른 길이었으며, 행복을 가져다주었던가를 생각한다. 자신의 삶만을 생각하지 않고 주변과 이웃에도 관심과 온정의 손길을 뻗쳤던가, 돌아볼 일이다. 마음에 묻은 이기심이라는 때, 화냄이라는 얼룩, 어리석음이라는 먼지를 털어내고 겨울나무처럼 빈 마음으로 서야 한다.
겨울나무는 성자 같다. 계절을 알려 주고 삶의 길을 가르쳐 준다. 나무들은 이때를 기다려 1년마다 한 줄씩의 나이테로 목리문(木理紋)을 가슴속에 새긴다. 목리문은 나무가 일생을 통해 집중력을 쏟아 그려낸 삶의 추상화이다. 나무처럼 녹음, 꽃, 열매, 단풍으로 주변을 생기롭게 만들어 감동을 주어야 목리문을 얻을 수 있다. 나도 1년의 삶에서 어떻게 깨달음의 꽃을 피워내 한 줄의 목리문을 새길 수 있을까.
정목일 수필가·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