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사회부
팀원들은 피로해소 음료 1병씩을 앞에 두고 김재권 이태원 지구대장과 30분간 면담을 했다. 그러고는 0시 20분부터 시찰에 나섰다. ‘현장의 속살을 보겠다’던 이들 공무원은 정장 또는 형광색 조끼를 입고 이태원역 주변 골목을 순찰했다. 미군 장병 등 외국인들은 이들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한 클럽 앞에서는 입구가 붐비면서 외국인과 내국인이 서로 밀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이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걸었다. 미군이 즐겨 찾는 클럽이 밀집해 있어 폭행이나 성범죄가 빈번히 일어나는 ‘사창가 골목’이나 ‘동성애자 골목’도 이들은 가지 않았다. 7월 26일 미군 군무원 3명이 한국인 2명을 폭행한 골목, 5월 30일 만취한 미군이 경찰관을 폭행한 술집 역시 이들의 동선엔 포함되지 않았다.
시찰단은 지구대 근무자를 제외하고는 주민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안 팀장이 미군 헌병을 만나 “순찰을 자주 오느냐”고 물은 게 전부다. 안 팀장은 기자에게 “주말 밤이라 즐기려는 사람이 바글바글한데 민폐를 끼칠 수는 없지 않느냐. 지구대에서 짜준 동선대로 돌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찰이라면 미군 범죄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전시행정’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30분간의 지구대장 면담은 전화로 들어도 될 얘기였고, 현장 순시 역시 ‘거리 구경’에 그쳤다. 그런데도 시찰단은 23일 “이번 순찰을 통해 미군 사건현장을 직접 체험했으며 이를 토대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자화자찬’식 보도자료를 냈다.
김 지구대장은 “미군들이 한국 경찰은 우습게보고 미군 헌병에게는 겁을 먹는다”고 말했다. 이날 우리 정부의 시찰을 지켜본 미군 장병과 헌병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한국을 만만하게 보는 건 미군 범죄에 관대한 ‘SOFA’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