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당 전당대회서 열변 고교생 ‘로리 윌’ 국민적 스타로
26일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16세 소년 로리 윌 군이 열정적으로 연설하고 있다. 영국 미러 홈페이지
연단에 올라선 소년은 연거푸 침을 삼켰다. 빌린 게 분명한 큰 양복 탓에 체구도 왜소해 보였다. 하지만 수줍던 떨림은 거기서 끝이었다. 연설이 시작되자 그의 힘찬 말투는 막힘이 없었다. 눈은 반짝였고, 그의 손짓 하나에 청중은 탄성을 쏟아냈다. 겨우 3분 남짓. 영국 정치계의 새로운 스타, ‘레이버 보이(Labour boy·노동당 소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6일 리버풀에서 열린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펼친 16세 고교생 로리 윌 군의 연설에 영국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BBC뉴스는 “10대 소년이 에드 밀리밴드 당수를 제치고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전했다. 벌써부터 베팅업체들은 긴급 설문조사를 한 뒤 “윌 군이 2040년 노동당 당수에 이어 총리가 될 확률이 50분의 1”이란 전망까지 내놓았다.
영국 정계의 독특한 전례 또한 한몫했다. ‘토리 보이(Tory boy·보수당 소년)의 21세기 버전’이 등장했다는 기대다. 1977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도 16세 소년이 연설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바 있다. 평당원이나 평범한 시민에게 전당대회 연설의 기회를 주는 것이 영국 정치의 전통이다. 당시 마거릿 대처 총리 앞에서 당당히 반전을 외쳤던 그는 ‘토리 보이’라 불리며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다. 바로 보수당 당수까지 지냈던 윌리엄 헤이그 현 외교장관이다. 영국 정치평론 웹진 폴리틱스는 “부잣집 도련님 티가 났던 토리 보이가 추상적 포부를 펼쳤다면, 레이버 보이는 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며 뜨거운 정열을 쏟아냈다”고 비교했다.
윌 군은 남동부의 소도시 메이드스톤에서 청소원으로 일하는 홀어머니, 8세 여동생과 함께 산다. 사교육을 받을 처지가 아니지만 성적은 상위권이다. 그는 연설을 끝낸 뒤 인터뷰에서 “지난해 처음 정치에 관심이 생겨 노동당에 입당했다”며 “또래들이 현 정부에 얼마나 실망하고 화가 나 있는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