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공직선거법에 ‘후보매수’ 금지 조항만 없었다면 그의 선의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인정으로 칭송받을 것이다. 부모 자식간이나, 형제자매 간에 오가는 돈이라도 2억 원이라면 어마어마한 액수인데 하물며 남의 어려운 사정을 보다 못해 그만한 돈을 선뜻 내놓는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곽 교육감은 “이것이 범죄인지 아닌지, 부당한지 아닌지, 부끄러운 일인지 아닌지는 사법당국과 국민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선의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박 교수 쪽의 반응을 보면 된다.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끼는지 아닌지 말이다.
광고 로드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돈 거래에 대해 ‘호의’(好意)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신이 과거 운영했던 생수회사 장수천의 채무를 지인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대신 갚아준 적이 있다. 강 씨는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를 피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인 이기명 씨의 용인 땅을 사주고 이 씨가 그 돈으로 변제를 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이 거래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됐을 때 노 전 대통령은 ‘호의적 거래’라고 규정했다. 또 자신의 아들과 조카사위가 동업한 기업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500만 달러를 보내준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호의적인 동기가 개입한 투자’라고 해석했다.
여기서 호의란 정상은 넘어서지만 그렇다고 불법으로는 볼 수 없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런 점에서 호의는 100% ‘착한 마음의 발로’라는 선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부정한 돈거래라도 처음부터 불법의 모습을 확연히 띠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는 선의나 호의, 인정으로 포장된다. 그것이 불법이 되고 안 되고는 액수의 많고 적음, 반대급부의 약속이나 실행 여부, 돈을 주고받은 사람의 관계와 신분 등 정황에 따라 결정된다.
법은 인정에 앞서 엄격성이 생명이다. 설사 선의나 호의에 입각한 돈거래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위법이 되면 법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그것이 법치다. 곽 교육감이 말하는 ‘인정 있는 법, 도리에 맞는 법’이란 게 도대체 어느 세계의 법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광고 로드중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