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총탄, 뉴욕 심장을 울리다
연출가 윤호진 씨
숨죽인 관객 앞에 배우 정성화 씨가 연기하는 안중근의 삶이 2시간 10분 남짓 속도감 있게 펼쳐졌다.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의 쫓고 쫓기는 역동적인 장면, 이토 히로부미(김성기)가 하얼빈역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선 객석에서 ‘오!’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빔 프로젝터의 영상과 실제 제작된 기차를 번갈아 교차시켜 눈이 휘날리는 가운데 기차가 달리는 이 장면은 이 뮤지컬의 백미로 꼽힌다.
안중근이 장엄하게 ‘장부가’를 열창한 뒤 사형 집행을 받는 장면으로 극이 끝나자 잠깐의 정적을 깨고 객석에선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커튼콜의 마지막은 정 씨가 장식했다. 일렬로 서 있던 출연 배우들이 중앙 부분을 갈라 정 씨에게 길을 터주자 관객들은 마치 누가 시킨 듯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2009년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한 뮤지컬 영웅이 뉴욕 데뷔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인 관객들 중에선 “너무 한국 중심의 시각이 담겨 있어 외국인에게는 편파적으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외국인 관객들은 오히려 칭찬 일색이었다.
1997, 98년 뮤지컬 ‘명성황후’를 이곳 무대에 두 차례 올린 이후 13년 만에 다시 다른 작품을 뉴욕 무대에 선보인 제작사 에이콤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윤호진 씨는 “예상했던 만큼의 반응이 나왔다”라면서도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외국인 관객이 스토리에 완전히 몰입하더라. 유엔 대사도 많이 참석했는데 이 작품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을 것이다. 반 총장께서도 1막이 끝난 뒤 쉬는 시간에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 선 창작 뮤지컬 ‘영웅’. 안중근 의사(정성화·왼쪽에서 두 번째)와 그 동지들이 일제의 재판정에서 대한제국을 침탈한 일제의 죄악을 열거하며 대한독립의 당위성을 노래하고 있다. 에이콤 제공
뉴욕=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