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담양군 손죽마을에 조성… “폐가에 가려져 찾기 힘들어 정원 등으로 만들어야”
2005년경 전남 담양군 금성면 손죽마을 1000㎡(약 300평)의 터에 초가집 3채 규모로 복원된 고하 송진우 선생 생가.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260호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고하는 3·1운동을 초기에 기획한 48인 중 한 명으로 지명돼 옥고를 치렀고 동아일보 사장으로 재임하던 1936년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사진을 게재하면서 손 선수의 앞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말소하는 사건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다.
고하 생가(전남도 문화재자료 제260호)는 2005년 손죽마을 1000m²(약 300평) 터에 초가집 3채 규모로 복원됐다. 복원된 생가에는 역사 탐방객들이나 대학생들이 자주 찾고 있다. 또 역사학자 등 연구가들이 간혹 머물다 가는 역사체험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생가 옆에는 지난해 초 118m²(약 36평) 규모의 고하기념관이 전통한옥으로 완공됐다. 생가 뒷산에는 대나무 생태 탐방로인 미니 죽녹원이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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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하 생가는 6년 전 완공됐지만 주변 정비사업은 아직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송평수 손죽마을 이장(70)은 “탐방객들이 고하 생가를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생가 주변 폐가들을 허물고 정원이나 주차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손죽마을 주민들은 최근 “마을 앞에 지방도로가 개설되면서 탐방객들의 사고 위험이 커졌다”며 담양군에 대책 마련을 요청한 상황이다.
담양군은 손죽마을 주민들의 요청을 감안해 행정안전부에 고하 생가 주변 조경사업이나 주차장 공간 확보 등을 위한 예산을 요청하기로 했다. 홍영기 순천대 역사학과 교수는 “고하는 항일지사인 기삼연 선생에게서 한학을 배우며 민족의식을 키웠고, 그 강직함은 동아일보 사장 등으로 활동하면서도 평생 이어졌다”며 “고하 생가나 기념관 주변 정비사업이 하루빨리 이뤄져 역사문화공간으로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