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이상 은퇴자들 ‘절박한 돈’ 폭락증시에 허공으로
#2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모 씨(56)는 지난해 말 주식에 5000만 원을 투자했다. 대학교 3학년인 딸의 결혼자금으로 모아뒀던 돈을 불리기 위해 주식 투자에 나선 것이다. 투자 초기에 이익을 봤던 터라 이번 폭락에도 원금은 10% 남짓 축나는 데 그쳤지만 그는 “딸아이 시집보낼 계획이 뭔가 틀어지는 것 같다”고 불안해했다.
은퇴자들이 주식 직·간접 투자를 통해 관리하던 노후자금 중 약 15조 원이 글로벌 증시 폭락의 직격탄을 맞아 공중에 사라졌다. 금융회사들이 증시 활황을 틈타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면서 대표적 위험자산인 주식에 투자하는 은퇴자가 크게 증가했는데, 이번 증시 폭락으로 노후를 기댈 ‘생존 자금’의 상당 부분이 없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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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세 이상, 이달들어 15조 원 날려
주식 직접투자를 하는 개인들이 이번 폭락 직전인 8월 1일 당시 보유한 주식은 319조6000억 원어치로 추산된다. 대주주 등 주요 투자자를 뺀 개인 보유 주식은 약 161조7000억 원이고, 이 중 55세 이상 은퇴자가 보유한 주식은 78조4000여억 원에 이른다. 이달 1∼12일 코스피 하락률(17.4%)을 감안하면 은퇴자들의 주식 투자 손실액은 13조6000억 원 남짓이다.
은퇴자들은 간접투자상품인 펀드도 노후자금을 불리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1일 현재 전체 주식형펀드의 자산은 약 86조 원으로, 이 중 10.9%인 9조 원이 55세 이상 은퇴자들이 투자한 몫이다. 이번 폭락으로 주식형펀드는 15%가량 손실을 봤으므로 은퇴자들은 1조4000억 원을 날린 셈이다.
은퇴자들의 주식 직·간접 투자 손실은 약 15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해외펀드 등 다른 손실까지 합치면 은퇴자들이 날린 투자금 규모는 더 불어날 수 있다. 조성만 신한은행 압구정 PB센터 팀장은 “은퇴자의 주식 투자금은 ‘노후 생존자금’이나 마찬가지여서 웬만한 자산가라도 폭락장에서 냉정하게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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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자 손실 충격은 젊은층의 몇 배
주가 폭락세가 길어지면 화병으로 병원을 찾는 은퇴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나타났던 현상이다.
남궁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주가가 폭락하면 (젊은 투자자들보다) 은퇴자들이 병원을 더 많이 찾는다”며 “2008년에도 자책감과 가족해체 위기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은퇴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자들은 돈벌 기회가 적고 인생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 탓에 자산 손실의 괴로움이 젊은 사람들보다 두세 배 정도 된다”고 소개했다.
이 때문에 은퇴자들은 가급적 주식투자 비중을 줄이고, 안전 위주의 투자자산 배분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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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