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50% “교수에게 학점 정정 요청한 적 있다”
○ 밑져야 본전?
1학기 성적 정정 기간인 요즘 상당수 교수들은 학생들의 e메일과 전화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스펙 쌓기 및 장학금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 성적 정정 요구가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적 정정 요구를 ‘밑져야 본전’으로 생각한다.
학생들은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거나 e메일, 문자메시지를 통해 성적을 올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 등 주요 포털 사이트에는 ‘성적 정정 성공하는 법’, ‘교수에게 보낼 성적 정정 e메일 표본’ 등이 버젓이 게시돼 있다. B학점을 A학점으로 올려 달라고 하기도 하고 제로 학점에 플러스를 달아 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도 있다. 학점에 플러스를 달아 주는 것은 순전히 교수 재량인 것을 학생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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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나서서 자녀의 성적 정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에 재학 중인 이모 씨(22·여)는 “학교 친구들 중 엄마들이 직접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성적이 납득이 안 된다고 항의하거나 찾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 성적 정정 문제로 갈등도
학생들의 강의평가 점수가 재계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시간강사들은 학생들의 정정 요구가 더 괴롭다. 다시 강단에 서려면 학생들과 원만한 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일단 ‘점수를 짜게 준다’고 인식될 경우 강의평가도 좋지 않게 나오기 때문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전임 교수보다는 주로 교양과목을 담당하는 강사들이 학생들에게 많이 시달리는 편”이라며 “성적 정정 기간마다 학과 사무실로 강사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달라는 학생들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말했다. 홍익대에 재학 중인 김모 씨(23)는 “일부 강사들은 아예 정정 기간 내내 휴대전화를 꺼놓는가 하면 성적을 일부러 늦게 띄워 학생들이 이의 제기를 못하게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달 초 고려대에서는 성적 정정을 요구하는 학생에게 시간강사가 폭언을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성적 정정 기간에 원래 A였던 학점이 B로 내려간 학생이 해당 강사에게 항의 전화를 걸었고 강사가 “다른 학생들이 성적 정정을 너무 많이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채점 방식을 변경했다”고 밝힌 것. 학생의 항의전화가 계속되자 결국 참다못한 강사가 막말을 한 것이다. 교내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해당 학생이 무례했다는 비판과 시간강사가 성적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한 학생의 성적 정정 요구를 거절했다가 ‘당신이 낸 문제가 정당한 평가 기준이라는 근거가 있냐’는 항의 e메일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 성적 수용도 하나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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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현립대 국제교류학과에 재학 중인 요시다 나가코 씨(22·여)는 “성적을 올려 달라고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프랑스 ASSEC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고려대 학생 윤모 씨(22·여)도 “프랑스 대학에서는 교수가 성적과 관련해서는 아예 ‘No Negotiation(협상 불가)’이라고 못을 박는다”고 했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는 “미국 대학에서도 성적은 교육자의 전적인 권한”이라며 “학생들에게 자신의 결과물을 수용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교육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심재웅 숙명여대 교수는 “최근 취업이 워낙 어렵다 보니 학생들이 점점 성적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성적을 최대한 투명하게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최만규 고려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역시 “수업 첫 시간에 전체 성적 중에 출석과 각 시험이 차지하는 비율을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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