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없는 수사 ‘박수’… 수사 타이밍엔 ‘눈총’
○ 초대형 경제사건 도맡아 수사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81년 4월 출범한 중수부는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 사건’이라는 장영자, 이철희 부부의 6404억 원대 어음사기 사건을 수사하며 이름을 알렸다. 전 당시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씨를 형부로, 국회의원과 안전기획부 차장을 지낸 이철희 씨를 남편으로 둔 ‘사채업계의 큰손’ 장 씨는 권력을 등에 업고 사기 행각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장 씨 부부를 포함해 경제계 인사 32명이 구속됐다. 당시 여당인 민정당 사무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물러나기도 했다.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들도 중수부의 표적이 됐다. 2003년에는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금강산관광사업 관련 청탁 명목으로 정치인들에게 돈을 건넨 혐의로 조사를 받다 목숨을 끊었다. 2005년 중수부는 50조 원대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혐의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한보그룹 한진그룹 한화증권 등도 중수부 수사를 받았다.
○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에 초점
출범 초기 경제, 금융 범죄에 초점을 맞췄던 중수부는 이후 정치권을 겨냥한 사정 수사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중수부는 1988년 ‘5공 비리’ 수사에서 전 전 대통령의 가족과 전 정권 실세를 잇달아 구속시키며 최고 수사부서의 입지를 굳혔다. 1995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 의혹 수사를 통해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을 구속 기소했다.
현 정부의 살아있는 권력도 중수부의 수사를 비켜 갈 수는 없었다. 1997년 중수부는 기업으로부터 수십억 원에 이르는 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씨를 구속했다. 당시 중수부에는 국민들의 격려가 쏟아져 들어왔다. 2002년에는 기업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씨와 김홍걸 씨를 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 ‘정치검찰’ 오명에 폐지 논란도
중수부와 고 노 전 대통령의 악연은 재임 때부터 이어졌다. 2003년 벌인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 잇달아 구속됐다. 당시 수사는 2004년 3월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국회가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처리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08년에도 악연은 이어졌다. 세종증권 매각 비리와 관련해 중수부가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를 구속하고 나섰다. 이 사건은 이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전방위 금품 로비 사건인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 이어졌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