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카드 발급을 보장한다는 한 카드발급 대행업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봤다. 6차례 시도 끝에 연결된 여성 상담원은 “신용등급 수준이나 직업 유무와 상관없이 휴대전화 번호에 대한 ‘사용신용’을 바탕으로 신용카드를 발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용신용’이란 낯선 단어에 머뭇거렸더니 “일반인들에게는 휴대전화 사용신용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지금 전화를 건 번호로 조회해 보니 신한, 현대, KB카드 중에서 원하는 카드 발급이 즉시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이어 상담원은 “우리는 합법적인 업체이기 때문에 대리발급 대가로 별도 수수료를 받지 않지만 29만6000원의 선납금이 필요하다”며 “이는 향후 휴대전화 사용요금으로 되돌려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만 가져오면 일주일 내 카드를 발급해줄 수 있다며 연락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신분증, 주민등록등본 1통. 일주일 내 가능. 상담원 ○○.’
신용카드사들의 회원 유치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들에게도 카드를 발급해준다며 금융채무 불이행자들을 유혹하는 길거리 광고물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신용카드 대리발급업체들은 상담원과 사무실을 갖춰놓고 ‘100% 카드 발급’ 등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길거리, 지하철역 같은 곳에 붙여놓고 기업형으로 영업하고 있다.
은행 대출이 쉽지 않은 저신용자들에게는 카드론을 이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 발급이 달콤한 미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카드사들은 “신용카드는 반드시 ‘본인’이 신청해야 한다”며 “휴대전화 신용을 바탕으로 한 카드발급 방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카드 대리발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 카드업계 관계자는 “본인의 신청에 의해, 신용등급을 심사한 뒤 발급하는 것이 신용카드”라며 “휴대전화 사용신용이란 단어도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대리발급 업체들이 대체로 체크카드를 발급한 뒤 자신들의 자금을 통장에 넣어 신용카드처럼 사용하게 해주고 ‘수수료’ 명목으로 높은 이자를 떼는 방식으로 영업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분증, 주민등록등본으로 개인 신용정보를 빼돌릴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신용카드 대리발급과 관련한 민원이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대부업체로 등록해 법망을 피해가는 등 영업행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