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일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문제는 영어인증제도에서 학생이 알아서 시험 성적을 제출해야 할 뿐 많은 대학은 관련 교육을 적극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졸업 전에 소정의 영어능력을 갖추는 것이 학생의 의무라면 그런 의무교육은 대학 등록금에 포함되어야 하고 대학은 학생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해야 할 책임을 갖는다. 그러나 등록금에 포함되지 않은 별도의 시험 준비 비용을 학생이 감당해야 한다면 그것은 졸업을 위한 의무라고 말할 수 없다. 많은 학생이 시대적 풍조를 따르며 좋은 곳에 취업하기 위해 스스로 알아서 시험점수를 높이니 대학은 졸업인증제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적지 않은 학생이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해 한 학기 등록금 못지않은 비용을 교실 밖에서 지불하고 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졸업학점을 이수한 후 인증제에서 요구하는 시험 내용과 무관한 곳에서 일하고자 하는 학생도 많다.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는 학생들은 이 점에 대해 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할까?
영어능력 인증이란 학교정책이 반드시 학교 밖 외부시험으로 관리될 필요는 없다. 영어능력이 요구되는 곳에서 영어시험이 사용되는 것과 모두가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준비하는 시험의 사회문화적 영향력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학이 정말 영어능력제도를 성공적으로 실행하겠다면 더 큰 책임감을 갖고 가르칠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학생들의 영어능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대학 수업으로 인증하지 않고 반드시 시험점수로 인증하겠다면 유사한 교내 시험을 무료로 운용하든가 전교생이 졸업인증 외부시험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학교가 돈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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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에게 좀 더 너그러운 배려심이 필요하다. 대학생들은 세상에 진입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 모든 준비가 돈이다. 그들은 영어가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공부가 생각만큼 잘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학생에게 열심을 다할 것만 주문하지 말고 대학과 기업이 돈을 더 쓰면서 더 잘 가르치고 평가하도록 애써 보자. 대학과 기업은 졸업인증제나 취업서류에서 요구하는 시험성적을 마치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높이곤 했다. 내가 준비하는 것 아니고 내 돈 쓰는 것 아니라고 그렇게 막 결정하지 말자. 수업을 통해, 면접장에서, 자체 시험만으로도 영어능력은 추정될 수 있다. 대학생들은 이 사회의 봉이 아니다.
신동일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