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유사구조로 식물성장 방해부산물 다이옥신은 동물에 치명적
“사기꾼이 이마에 사기꾼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냐?”
착하고 성실해 보여 믿었다가 사기를 당했다며 친구에게 하소연할 때 흔히 듣는 말이다. 인간사는 물론이고 자연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와 가장 독성이 강한 다이옥신인 ‘TCD다이옥신’도 여기에 해당한다.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에이전트 오렌지를 비롯해 에이전트 화이트, 에이전트 블루 등 총 7가지 제초제를 썼다. 이 물질을 담은 드럼통의 띠 색깔로 구분했기 때문에 ‘무지개 제초제(Rainbow Herbicides)’로도 불린다. 이 중 가장 많이 사용됐을 뿐 아니라 최근 문제가 된 게 바로 에이전트 오렌지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2,4-D’라는 성분과 ‘2,4,5-T’라는 성분이 반반씩 섞인 제초제로 잎을 시들게 해 식물을 죽이기 때문에 고엽제라고 부른다. 두 분자 모두 식물의 성장호르몬인 ‘옥신(Auxin)’과 구조가 비슷하다. 호르몬은 식물이나 동물 같은 다세포 생물이 자라고 생존하는 데 필요한 세포 사이의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이다. 세포 하나하나는 호르몬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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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물질들은 동물의 성장호르몬과는 다른 구조라 동물에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2,4,5-T를 합성할 때 부산물로 나오는 TCD다이옥신이다. 에이전트 오렌지의 경우 2,4,5-T 10만 개에 6개꼴로 TCD다이옥신이 있었다.
TCD다이옥신은 식물한테는 별 영향이 없지만 동물에게는 치명적이다. TCD다이옥신은 동물의 세포 안에 있는 ‘AH수용체’ 분자에 달라붙는다. 그러면 이 수용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암이나 내분비계 교란 등 고엽제 후유증 증상을 일으킨다. AH수용체는 태아의 발생과정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에이전트 오렌지가 뿌려지는 동안 베트남에서 15만∼50만 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고 한다. 요즘은 TCD다이옥신 때문에 2,4,5-T를 제초제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2,4-D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제초제다.
(도움말: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 서울대 생명과학부 노유선 교수)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