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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강남고속터미널서 사제폭탄 1시간 간격 ‘쾅’

입력 | 2011-05-13 03:00:00

물품보관함서 연쇄폭발… 동일범 소행 가능성 높아




현장 감식 12일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의 물품보관함에서 1시간 간격으로 잇따라 사제폭탄이 폭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현장 감식을 벌이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2일 서울역과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폭발이 일어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두 현장에서 같은 성분의 화약이 발견된 점과 부탄가스를 이용한 동일한 사제폭탄 제조 방식 등으로 미뤄볼 때 동일범의 소행일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사건 현장 근처의 폐쇄회로(CC)TV에 찍힌 유력 용의자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55분경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고속버스터미널 1층 경부선 맞이방 물품보관함에서 화약과 부탄가스통으로 만든 사제폭탄이 폭발했다. 당시 보관함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한 한 상인과 청원경찰이 휴대용 소화기를 뿌렸다. 그 순간 붉은 섬광이 비치며 폭발이 일어났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불이 나면서 터미널 안에 있던 시민들이 놀라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현장을 목격한 한 상인은 “불이 꺼진 뒤 소화기로 보관함 문을 내리쳐 강제로 열었더니 전선이 연결된 부탄가스통이 새까맣게 탄 채로 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오전 11시 7분에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동쪽 2번 출입구에 설치된 물품보관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 배낭 2개 멘 남성, 사물함에 1개 넣어 ▼

어제 새벽 서울역 폐쇄회로(CC)TV에 찍힌 용의자의 모습. 용의자가 폭발물을 사물함에 넣고 있다. 서울역 CCTV 화면 촬영

가로 40cm, 세로 32cm, 깊이 60cm 크기의 서울역 내 가장 작은 보관함으로 주로 기차 탑승 전 배낭 및 간단한 소지품을 넣어두려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한다. 고속버스터미널과 달리 서울역 보관함에서는 폭발은 일어나지 않고 천천히 연소 작용만 일어났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시민은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고 갑자기 사물함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전기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한 줄 알고 대피했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증거물이 모두 타버린 고속버스터미널보다는 사제폭탄이 비교적 잘 보존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장에 출동해 증거품을 수거해 간 경찰에 따르면 불에 검게 탄 등산용 배낭에선 부탄가스통과 유리병 파편, 12V 배터리, 타이머, 검은 화약 물질이 발견됐다. 배터리와 전선으로 연결된 타이머는 시곗바늘이나 숫자는 없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폭 장치를 작동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부탄가스는 폭발 시 파괴력을 키우려고 넣은 것으로 보이나 다행히 터지지 않아 피해가 적었다”고 전했다.

사건 발생 직후 서울역에 설치된 CCTV를 분석한 경찰은 이날 오전 5시 51분경 해당 물품보관함에 배낭을 집어넣는 한 남성을 포착했다. 어두운 색 상의와 하의, 벙거지를 쓴 이 남성은 두 개의 배낭을 메고 와 이 중 하나를 사물함에 넣고 3분 만인 5시 54분 역 밖으로 나갔다. 경찰 관계자는 “뒷모습만 찍혀 있어 얼굴은 특정되지 않았고 화면이 흐릿해 정확하진 않지만 손에는 장갑을 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남성이 나머지 한 개의 배낭을 들고 고속터미널로 이동해 2차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서울역과 터미널 내 모든 CCTV를 분석하는 한편 주변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다. 다만 부탄가스를 사용한 점으로 볼 때 대형 인명피해를 노린 테러보다는 사회에 불만을 표출할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별도로 사이버팀을 투입해 인터넷을 활용한 수사도 병행하고 있다.

경찰청은 이번 사물함 폭발 사건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열어 전국 경찰에 지하철, 버스터미널, 공항 등 다중이용시설 내 사물함에 대한 일제 점검을 지시했다. 경찰은 최근 미군의 오사마 빈라덴 사살과 관련한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일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주한 미국 및 파키스탄 대사관에도 경찰관을 추가 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한 미국 등 42개국의 주한 공관에 대해 순찰과 경비 및 불법 체류자 감시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