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삼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우리네 옛 농촌의 정한(情恨)이 참기름 짜내듯 꾸역꾸역 삐져나오는 이 소설에 미국인들이 감동하고 있다는 소식은 뜻밖이다. 영문판 출판사 관계자는 책을 읽다 “넋이 나가 머리를 쥐어뜯고 울면서 집 안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더는 한겨울 곱은 손으로 홍어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냥 토막 쳐 제사상에 올리겠다고 선언한 엄마, 가묘를 세우며 시누이가 “내 아래에 자리 잡으라”고 하자 “죽어서도 고모 심부름하게요?”라면서 눈을 흘기는 올케의 가슴속을 그들이 어떻게 읽어냈을까. ‘원래 영어로 쓴 작품처럼 읽히도록’ 글을 옮겼다는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 번역 후 60여 통의 e메일을 보내 작가를 경악시키며 꼬박 1년을 닦고 죄고 기름칠한 편집자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외교통상부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문에 200개가 넘는 번역 오류가 나온 것이 △촉박한 시간 △외부검증 부재 △전문인력 부족 때문이라고 했다. 하나같이 ‘엄마를…’의 출간 과정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라 신병훈련소의 ‘오시범 조교’를 보는 듯하다. 남들 소설책 한 권 만드는 것보다 못한 정성으로 나라의 밥줄이 걸린 문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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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영재’로 KAIST에 입학한 수재는 로봇 관절 설계가 아니라 영어 미적분 수업 때문에 괴로워했다. 학생들은 “많은 친구가 (영어수업 때) ‘멍’ 때리고 있다” “최고의 강의로 평가받던 수업이 영어강의로 바뀐 뒤엔 그저 그런 수업이 됐다”고 토로한다. 선택과 집중의 실종이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일본의 마스카와 도시히데 박사는 영어를 하도 못해 교수들이 영어시험을 면제하고 대학원에 넣어줬다. 논문은 대학 후배가 영역했다. 그런 그가 노벨상을 받으러 가면서 ‘쿨’하게 개념정리를 했다. “영어로 된 물리 용어는 안다. 그러나 영어로 말은 못 한다. 그래도 물리는 할 수 있다.”
이형삼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