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수 논설위원
제도와 시스템만으로는 개혁 안돼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는 사법과 국방, 정치의 개혁 필요성을 절감했다. 일부 이념적 편향 판결과 여전한 전관예우 관행, 판검사 비리가 사법에 대한 극심한 불신을 불렀다. 천안함과 연평도 피격에 대한 군의 대응 미숙은 국민의 안보 불안을 키웠다. 불법 정치자금 조달과 폭력 국회가 정치 불신을 더 심화시켰다. 이 세 분야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야 하는 주춧돌이다. 부실상태가 계속되면 우리의 자유민주와 법치주의, 국가안보, 위민(爲民)정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있다. 수많은 개혁 과제가 제기되고 논의됐지만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개혁의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모호하다. 사법개혁의 주체는 법조 3륜인가, 국회인가. 국방개혁의 주체는 청와대인가, 군 현역과 예비역 장성들인가. 정치개혁의 주체는 국회인가, 행정부인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인가. 논란 과정에서 그 어느 쪽도 국민의 눈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진정한 개혁 의지가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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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중립적인 고유기능을 살리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대법관을 20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대법원의 위상과 기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
국방개혁안의 핵심인 합동성 강화 방안은 반대 의견에도 경청할 대목이 있다. 각군(各軍)의 특수성에 입각한 주장을 집단이기주의로만 매도할 일이 아니다. 합동작전의 지휘체계를 합참의장→각군 참모총장(작전사령관 겸직)으로 상향 조정하고 합참의장에게 인사·군수(軍需)에 관한 일부 군정권(軍政權)을 주는 것이 실제 작전에서 효과를 나타낼지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박종헌 공군참모총장이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참모총장이 작전사령관 역할을 하면 다른 업무에 소홀해지기 쉽다”고 한 말은 일리가 있다.
핵심은 사람인데 사람은 그대로니
국회가 추진 중인 기업과 단체의 정치헌금 합법화는 ‘개악(改惡)’이지 ‘개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성능과 시스템 향상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졸음이나 음주, 과속운전을 하면 사고가 난다. 안전운행은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분야의 개혁 작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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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