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억∼800억 유로 규모
조제 소크라트스 포르투갈 총리는 이날 밤 성명을 통해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오늘 EU 집행위원회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이를 순간을 맞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 예견된 구제금융 수혈
▼ 국채값 추락-신용등급 또 강등에 ‘백기’ ▼
소크라트스 총리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지난달 23일 추가 증세와 복지 축소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긴축안을 의회에 제출했지만 여소야대의 의회는 이를 거부했다. 소크라트스 총리가 결국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후 정치 불안이 가중되면서 투자자들이 포르투갈의 채무 상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포르투갈 국채 값이 추락(국채 수익률 급등)하기 시작했다. 총리 사임 당시 7.63%였던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은 2주일 만인 6일 8.8%를 돌파하고, 이날 1년만기 국채 수익률도 독일의 30년만기 국채 수준인 5.9%까지 치솟았다.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은 5일 한때 9%를 넘어섰다.
여기에 무디스가 국가신용등급을 내린 지 3주 만인 5일 ‘A3’에서 ‘BAA1’으로 또다시 한 단계 강등하는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앞다퉈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을 낮춰 포르투갈 국채시장의 불안이 커졌다. 포르투갈 은행권이 요구한 브리지론(단기차입)을 EU가 거절해 상황은 포르투갈 정부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최소 600억∼800억 유로 지원 받아야
포르투갈이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하자마자 EU 집행위는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고려해 신속한 지원을 약속했다. EU 집행위는 “조제 마누엘 바호주 집행위원장은 소크라트스 총리에게 관련 규정에 따라 최대한 신속히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EU는 7∼9일 이사회 순번의장국인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열릴 예정인 비공식 재무장관회의에서 포르투갈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규모와 조건 등을 본격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포르투갈은 당장 6월 중순까지 상환해야 할 채무 규모가 91억 유로에 이른다. 시장에서는 포르투갈에 최소 600억∼8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이 지원될 것으로 추산한다.
○ 스페인에 쏠린 국제사회 시선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 그룹인 ‘PIGS’에서 아직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은 스페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행히 최근 스페인의 상황이 호전되고 있어 스페인의 구제금융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페인의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은 5% 초반대로 안정된 수준을 보이고 있다. 포르투갈에 비해 은행권 부실도 적다.
엘레나 살가도 스페인 재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성장과 고용시장 전망이 밝지 않지만 스페인은 다음 구제금융 대상국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도 이날 스페인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스페인은 올바른 재정정책을 펴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시장은 일단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신청이 불확실성 해소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 금감원 “포르투갈 사태, 한국엔 영향 미미” ▼
금융감독 당국은 7일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신청이 국내 금융시장이나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포르투갈에 대한 국내 금융회사의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110만 달러의 지급보증에 그쳐 전체 대외 위험노출액 587억7000만 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수준이다. 또 국내 은행이 포르투갈에서 외화로 차입한 금액도 없다.
실제로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소식은 7일 국내 금융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원-달러 환율은 1,088.50원으로 전날보다 1.70원 오른(원화 가치는 내린) 수준에서 마감됐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4.57포인트(0.21%) 내린 2,122.14로 마감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