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향 커뮤니케이션90년대 중반 PC통신 등장대중문화 ‘소통의 장’ 전파서태지 중심 팬덤 탄생스타의 직접 빠른 확산
서태지는 ‘문화疏通(소통)령’이었다. 1990년대 전화사서함으로부터 열린 그와 팬들의 직접적인 만남의 공간은 PC통신을 통해 더욱 확장됐다. 더 넓어진 소통 공간은 이제 다양하게 진화했고, 많은 스타들은 더욱 가깝고 적극적으로 팬들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퀴즈 하나. 다음이 설명하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의견이 비교적 자유롭게 개진되고 공개되며, 끊임없이 교류되는 공간.”
헷갈린다면. 다음은 어떨까.
그래도? 마지막 힌트.
“동시에 수십만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답은? ‘PC통신’이다. 1995년 말,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세계를 중심으로 당시 ‘새로운 여론 매체’로 급부상한 ‘PC통신에 떠오른 대중음악 이야기’를 펼쳐놓은 책 ‘서태지를 읽으면 문화가 보인다?!’는 PC통신을 그렇게 규정했다.
자, 1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PC통신’이라는 단어를 ‘인터넷’ 혹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으로 대체한다 해도 가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교류’는 곧 ‘소통’. 소통은 또 “일방적인 전달-수용의 메커니즘이 아닌, 말 그대로 1대 1, 1대 다(多)의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이다.(위 책 인용) 그 공간이 달라지고 더욱 진화한 것일뿐, 소통은 세대와 공간을 넘어서는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이었고 또 그럴 것임에 틀림없다.
생뚱맞게 보일지언정, ‘서태지를 읽으면 문화가 보인다?!’를 인용한 것은 서태지의 시대로부터 소통의 광범위한 공간이 열렸음을 말하기 위해서다. PC통신은 특히 당시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에 관한 한 유일무이한 소통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서태지는 그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스타와 팬의 소통이란, 1960년대 이래로 ‘리사이틀’ 혹은 콘서트 아니면 언론 매체를 통한 “일방적인 전달-수용의 메커니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좀 더 확장한 스타가 바로 서태지였다. 1990년대 초반, ‘삐삐’라 불린 새로운 통신수단인 무선호출기의 등장과 함께 서태지는 ‘전화사서함’을 소통의 도구로 삼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녹음해놓으면 팬들이 일정한 번호로 연결해 목소리 메시지를 듣는 형태였다. 이는 일방적으로 전달되던 스타의 소식을 팬들이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음을 뜻했다.
● PC통신에서 SNS까지
그 안에서 서태지로 상징되는 대중스타에 관한 논쟁도 활발했다.
특히 일부 가수들의 표절 문제나 음반 등에 대한 사전심의 문제는 한 시대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은, 소통의 공적인 순기능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꼽히곤 한다.
동시에 서태지의 팬들은 이제껏 ‘오빠!’라는 환호에만 묻히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소통의 커뮤니티를 형성해갔다. 팬클럽 활동을 좀 더 체계화했고 스타 혹은 기획사들과 긴밀한 소통의 창구를 마련해가며 그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들의 ‘절규’는 청소년 문화에 대한 새로운 논점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그 이후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팬덤을 새롭게 일궈갔다. 그리고 가수 서태지뿐 아니라 팬들 역시도 그 이후 팬덤의 중요한 기류를 바꾸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 SNS, 소통의 또 다른 유력 통로
그리고 2000년대. 서태지는 대중의 곁을 잠시 떠나기도 했지만 소통에 대한 갈망은 그대로 남았다.
인터넷의 대중화를 넘어 빠르게 발전한 온라인 문화는 다양한 소통의 창구를 만들기 시작했고 또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창구는 이메일과 수많은 개인 혹은 단체의 홈페이지, 스타 팬 사이트와 팬 카페 등으로 진화, 발전하며 수없이 가지를 쳤다. 스타들은 자신들의 목소리 창구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게 됐고 팬들 역시 자신들의 환호를 갖은 통로로 전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온라인을 통한 다중의 강력한 목소리 창구가 되어 지금까지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후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블로그는 본격적인 ‘소셜네트워크’의 기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이르며 SNS는 이제 새로운 소통의 유력한 통로가 되었다.
이 같은 ‘소통의 역사’는 끊임없는 대화와 교류, 섞임과 어울림의 갈망의 역사에 답하는 것이다. 그 통로가 달라졌을 뿐, 세상은 늘 소통을 갈구해왔고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아무런 원칙도, 압력도 없는 것 같지만, 그 속엔 엄연히 자발적인 규칙과 합의가 존재한다”는 ‘서태지를 읽으면 문화가 보인다?!’ 속 구절도 소통에 관한 한, 여전히 유효하다.
사진제공|서태지컴퍼니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트위터 @tadada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