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그동안 카다피 정권이 반대파를 철저히 억압해온 탓에 반카다피 진영을 묶어줄 조직이나 인물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애초부터 반카다피군과 카다피 진영의 전력 차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일부 정부군 병사가 반카디피 진영에 가담했지만 리비아 정예 병력의 80% 이상은 카다피 국가원수의 지휘를 받았다. 반카다피군에게 중무기는 노획한 탱크 몇 대가 고작. 반면 카다피 진영은 비행기 탱크 장갑차까지 있었다. 카다피군은 이런 우세한 병력과 장비를 한 곳씩 집중시켜 차례로 도시를 점령해 나간 데 비해 반카다피 진영은 뭉칠 사이도 없이 봉기를 일으킨 도시에서 뿔뿔이 각개격파를 당했다.
게다가 카다피 원수는 막대한 오일머니로 용병들을 충원해 군사력을 보충했다. 통상 군 내부에서 이탈이 생기면 독재자가 무너지는 게 민주혁명의 코스지만 카다피 원수는 용병과 친위대라는 수단을 통해 군의 이탈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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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제사회는 카다피군의 공습을 막기 위해 리비아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논의했으나 러시아 중국 등의 반대로 합의하지 못했다. 산유국인 리비아에 이권이 개입된 중국과 러시아는 금융제재 같은 간접적인 제재에만 참여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중국은 리비아와 188억 달러에 달하는 50개 건설 프로젝트에 서명했고 러시아도 최근 17억 달러 규모의 무기 수출 계약을 협상했다. 카다피 원수가 16일 “우리는 더는 서방을 믿지 않는다”며 러시아 중국 인도 회사를 투자 프로젝트에 초대하고 싶다고 밝힌 것은 이런 이해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 대한 부담 때문에 리비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데 부담이 있었다. 포스트 카다피의 불확실성, 즉 강력한 중앙집권이 무너져 무정부상태가 되면 알카에다 같은 극단적 이슬람주의자가 발호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 서방국가를 주저하게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Q. 카다피는 어떻게 기사회생한 것일까.
국제사회가 군사 개입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 것도 백척간두에 몰렸던 카다피 원수에게 시간을 벌어줬다. 카다피 원수는 군 내부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공군력을 바탕으로 저항하면서 친위대를 정비하고 용병을 모았다. 게다가 11일 터진 동일본 대지진은 중동 민주화, 리비아에 쏠린 세계 이목을 분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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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줄곧 ‘전부(all) 아니면 전무(nothing)’라고 말해온 카다피 원수는 협상을 통해 정권을 유지하는 일은 없다고 누누이 밝혔다. 이에 따라 카다피 원수가 승리하면 반카다피 세력에 대한 피의 숙청이 예상된다. 경제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2003년 포기했던 대량살상무기(WMD) 카드를 다시 꺼낼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영국 BBC방송은 “만약 (카다피 원수가 이번 내전에서 이겨) 대량살상무기 카드를 다시 꺼낼 경우 국제사회는 리비아에 더 강력한 제재를 실행할 것이고 카다피 원수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