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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크릿 가든’ ‘싸인’ ‘마이더스’ 등 개성 연기로 뜬 김성오

입력 | 2011-03-14 03:00:00

“10년 걸려 의사- 판검사 되듯 배우 되려고 인생 10년 투자”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나 사람 안 죽였어…. 오늘은.”

그가 이 대사를 던지며 혀를 날름거리자 드라마의 시청률도 놀라 뛰었다. 최근 종영한 SBS ‘싸인’의 16회는 그의 호연에 힘입어 처음으로 시청률 20%를 넘겼다. 망치로 무차별 살인을 하는 연쇄살인범 이호진 역의 김성오(33·사진) 얘기다.

잔인한 장기밀매업자 종석(영화 ‘아저씨’), 악덕 사채업자 차부철(‘자이언트’), 어리바리 김비서(‘시크릿가든’), ‘싸인’의 이호진에 이어 ‘마이더스’의 건달 김도철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그는 어느새 ‘문밖을 나서면 사람들이 몰려와 카메라를 들이대는’ 배우가 됐다.

12일 오후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뜨기 전까진 “안 해본 게 없다”고 했다. “대리운전도 해봤고, 이것저것 물건도 팔아봤고요. 통장 잔액이 바닥을 보이면 인터넷 검색해서 되는 대로 돈을 버는 거죠.”

무명 생활은 길었다. 2000년 연극에 처음 출연한 뒤 2009년 SBS 공채 탤런트가 되기까지 “돈을 받기보다는 내 돈을 써가며” 활동했다. 연한 갈색 눈동자에 흰 피부, 뾰족한 턱. 스스로 “도롱뇽을 닮았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독특한 외모는 처음엔 단점이었다. “한번은 영화 오디션을 봤는데 조감독이 저보고 ‘성오 씨는 캐스팅하면 CG값이 더 들겠어’라고 하는 거예요. 제 눈동자를 까맣게 칠해야 한다는 거죠.”

그가 연기를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다소 엉뚱하다. “군대 있을 때 내가 연기자가 될 수 있을지 실험을 자주 했어요. ‘여기서 갑자기 쓰러지면 어떻게 반응할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믿을까’…. 한번은 군대 웅변대회에서 순전히 꾸며낸 내용으로 웅변을 해서 1등을 했어요. 눈물도 흘려가면서 연기한건데 사람들이 ‘감동받았다’며 박수를 쳐 주더라고요. 그때 ‘아, 가능성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이런 엉뚱함은 그가 배역을 맡을 때마다 발휘해온 상상력과 맞닿아 있다. 희곡 몇 편을 써서 미니 홈피에 올려두기도 했다. ‘김비서’ 캐릭터도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원래 김비서는 ‘사무실 벽’ 같은 존재였어요. 1, 2회 대본을 보니 ‘결재해 주십시오’ 같은 한 줄 대사만 있더라고요. 사장 김주원이 이렇게 까칠한데 저까지 흔히 보이는 비서들처럼 철두철미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좀 허술하게, 머리도 바가지 머리로 자르고 제 생각대로 연기했는데 조금씩 대본 분량이 늘어나는 걸 보고 ‘아, 작가님도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인정해 주셨구나’라고 생각했죠.”

어릴 때 심형래 주연의 ‘우뢰매’를 좋아했다는 그는 마이더스에서는 김비서와는 또 다른 까불대는 건달 연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연기를 시작하던 시절, 남들이 의사, 판검사 되기까지 10년씩 걸리는 것처럼 나도 배우가 되기 위해 내 인생을 투자하는 거다, 그러다가 금맥이 터지면 대박이 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명품 조연’의 대열에 올라 현빈과 나란히 CF에도 출연했으니 이젠 대박이 난 걸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보여드린 건 10% 정도밖에 안 돼요. 제가 누군가가 되는, 캐릭터가 강렬한 역할만 맡아 왔잖아요. 이제는 제 안에 있는 뭔가를 끄집어낼 수 있는 역을 맡고 싶어요. 그러면 배우로서도 조금 더 발전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