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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고민 끝에 ‘축산업 쿼터제’ 들고 나왔는데…

입력 | 2011-03-04 03:00:00

“피해 최소화 해법” vs “축산농 반발 클것”





30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을 도살처분한 구제역 파동을 계기로 청와대가 축산정책의 기본 축을 바꾸는 방침을 정했지만 축산 농심(農心)의 향배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청와대의 고민은 좁은 축사에 많은 소와 돼지를 몰아서 키우는 대규모 축산방식의 경우 가축의 면역력 약화가 불가피해 구제역에 취약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미국 남미 유럽처럼 가축을 방목하거나 넓은 공간에서 사육하는 나라에선 구제역이 덜 발생한다.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사육 마릿수 제한 및 쿼터제다. 청와대 관계자는 3일 “한국처럼 좁은 국토에서 방목은 선택할 수 없다”며 “축사 규모, 분뇨 처리 및 방역 능력에 따라 사육 마릿수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적극 검토 중인 ‘축산업 허가제’는 일반 축산농가가 대상이 아니다. 중대형 축산업자에게만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대형 축산농은 이번 구제역 파동 때 대규모 도살처분의 중심에 섰다.

사육 마릿수를 제한하는 강력한 허가제는 가축 질병 방역뿐만 아니라 축산물 가격 안정에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3일 “전체의 사육 규모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 가격의 급등락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 같은 허가제 도입을 지난해 여름 이후 검토했지만 결행하지 못하다가 구제역 파동을 계기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최중경 당시 경제수석비서관이 축산정책 당국의 건의를 받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런 규제정책이 축산농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중대형 기업형 축산농가에만 적용되는 규제정책이 자칫 영세 축산농가의 수입에 지장을 주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축산업계 이해당사자들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규제정책에 적극 반대할 경우 새로운 사회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정치적인 부담이다. 벌써부터 축산업계 일각에서는 “사육 마릿수 총량제와 쿼터제의 취지가 좋더라도 정부가 개별 농장의 사육 규모를 지정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신중한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제도가 발표될 경우 구제역 정책 실패론을 감추기 위한 노력으로 곡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올 초 라디오·인터넷 연설문에서 “축산업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와 함께 강력한 대책 마련을 예고하려던 대목이 최종 검토 과정에서 빠진 것도 이런 정치적 판단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지방에서 대규모 축산농들은 지역 실력자인 경우가 많다”며 “규제정책이 충분한 준비 없이 공개돼 오해가 확산된다면 민심이 떠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발표 시점이 4·27 재·보궐선거 이후로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청와대에서는 선거의 유불리 때문에 꼭 필요한 정책의 발표를 미룰 필요가 없다는 원칙론도 나온다.

앞서 이 대통령은 정부 내에서 구제역 백신 접종 여부를 놓고 “구제역 청정국 지위가 필요하다”는 축산주권론과 “더 큰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경제논리가 맞섰던 것과 관련해 “경제적 관점도 비중 있게 보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2월에 정부 내 구제역 대응팀장을 결정할 때도 농업 전문가가 아니라 경제 관료인 김대기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게 맡겼다는 후문이다. 현재 구제역 대응팀장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직접 맡고 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