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도쿄 신주쿠서 생체실험표본 발굴 ‘비밀스러운 터파기’ 한창
일본 도쿄 신주쿠 구의 도야마 공원 부근 옛 육군군의학교 방역연구실 터에서 유골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전체 발굴 면적은 3000㎡로 이달 말까지 작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공원 한편에서는 높은 담장을 두른 채 ‘비밀스러운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은 바로 70여 년 전 일제가 한국인과 중국인을 상대로 잔혹한 생체실험을 한 ‘만주 731부대’의 사령부가 있었던 장소다. 생체실험 희생자로 추정되는 시체가 22년 전 발견된 데 이어 관련자들의 증언이 잇따르자 일본 정부는 지난달 21일부터 의혹 규명을 위한 발굴 작업에 나섰다.
전체 3000m²의 터에서 삽차의 터파기와 조사원의 유골 찾기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조사원 10여 명이 가로 11m, 세로 8m의 구덩이에 들어가 유골 찾기 작업을 벌이고, 그 옆에서는 삽차 3대가 또 다른 구덩이를 파고 있다.
○ 첫 유골 발견서 공식 조사까지 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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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표본 매장” 증언 간호사 출신 이시이 씨
그러나 당시 일본 정부는 “연구실습용 시체를 전쟁터에서 가져왔을 개연성이 크다”며 그대로 덮으려 했다. 관할 지자체인 신주쿠 구도 “유골은 몽골계로 추정된다”는 막연한 감정 결과만 내놓았다.
진실 규명에 소극적이던 일본 정부가 발굴조사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육군군의학교 간호사 출신인 이시이 도요 씨(88·여)의 2006년 증언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종전 후 주둔한 미군에 들키지 않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시체 표본을 매장했다”며 구체적 장소까지 지목했다.
비슷한 시기에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森村誠一) 씨도 731부대의 만행을 고발한 책 ‘악마의 포식’에서 “방역연구실 뒤쪽에 10m 깊이의 구덩이를 파고 연구실에 진열돼 있던 포르말린병에 들어 있는 인체 표본을 통째로 묻었다”고 적었다. 후생노동성은 결국 발굴조사를 약속했고, 이곳에 있던 공무원주택이 최근 철거되면서 조사에 착수했다.
○ 731부대의 진실은 파헤쳐질까
이달 말까지 진행되는 이번 조사에서 유골이 나온다고 해도 생체실험 희생자라고 특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731부대의 생체실험 자체를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의지도 문제다. 전쟁 중에 가져온 시체라고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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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1부대 ::
만주를 점령한 일본 관동군의 세균전 부대인 ‘방역급수부’를 뜻한다. 731은 부대번호다. 1933년에 설립돼 한국 중국 등의 전쟁포로에게 페스트균을 비롯한 세균병기나 독가스를 투입하는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감염 실험 후에도 희생자가 숨을 거둘 때까지 동상(凍傷)실험, 총탄 관통 실험을 계속했으며 희생자가 3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