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홋카이도 구시로 여행기
눈 덮인 호수, 눈꽃이 만발한 겨울 나무, 노천온천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여유롭게 노니는 백조…. 굿샤로 호를 바라보고 있자면 어쩐지 현실세계가 아닌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구시로=심은정 프리랜서
홋카이도 동남부에 있는 항구도시 구시로. 국내에서는 여름철 골프투어를 위한 구시로행 전세기가 때때로 뜨기도 하지만, 많은 여행자에게 아직 낯선 곳이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구시로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알게 된 점은 구시로의 뜻이 일본의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의 언어로 ‘건널 수 있는 강’이라는 것.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 목적지라는 사실에 여행의 설렘이 배가된다.
봄부터 가을까지 구시로 관광의 초점은 습원(濕原)에 모아진다. 198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습지의 넓이는 무려 2만6861ha(약 2억6861만 m²). 원시 자연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습원보다 더 빛나는 곳이 있다.
도쿄 하네다 공항을 거쳐 구시로 공항에 도착했다. 게이트가 두 개뿐인 작고 깔끔한 공항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구시로에’라는 한글 환영문구도 있었다. 공항을 나서자 짭짤한 바다냄새가 온몸을 휘감았다. 구시로 가이드를 맡은 안현숙 씨(39)는 삿포로에서 산 지 올해로 17년째라고 했다.
“홋카이도에선 삿포로 빼곤 다 ‘시골’이나 다름없어요.(웃음) 홋카이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삿포로에 몰려 있으니까요. 구시로는 여름철에 종종 왔었는데, 겨울엔 또 처음이네요. 다른 지역에 비해 동부는 눈이 덜 오는 편이지만 삿포로 쪽보다 추워요. 삿포로에선 스키를, 이쪽 동부에선 스케이트를 즐겨 탄다고 해요.”
‘이 정도 내린 건 눈도 아니다’라는 안 씨의 말에도 불구하고 제설차가 한편에 밀어 놓은 눈 더미는 웬만한 어른의 키를 훌쩍 넘었다. 그는 내비게이션을 홋카이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굿샤로 호로 설정했다. 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풍경은 수묵화 같았다. 온통 눈으로 덮인 평탄한 들판에는 사람 발자국 대신 갖가지 모양의 동물 발자국이 여러 개의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조그만 발자국들은 마치 백조온천으로 어서 가보라고 조잘거리는 듯했다.
구시로=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