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삭 의사 부인 사망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경찰이 남편 A 씨(31)에 대해 다시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함에 따라 한 차례 영장을 기각했던 법원이 이번에는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된다. 이 사건은 △시신의 상태 △현장에 남은 흔적 △사망 추정 시간 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동아일보는 21일 국내 대표적 법의학자인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58)와 강력사건을 20여 년간 다뤄 본 박충근 전 대구지검 서부지청장(55·변호사)의 견해를 들어 봤다. 》
■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교수 “목 양쪽 피하출혈 강하게 눌린 증거”
이 교수는 “의사이기 때문에 아토피를 긁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남에게 시켜 가면서까지 피부를 긁었다는 해명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사건 당시 A 씨의 팔을 찍은 사진이 있다면 전문가들이 어떻게 생긴 상처인지 정확히 구분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직장(直腸)온도 변화 검사는 현장에서 되도록 빨리 해야 오차가 적다”고 지적했다. 사망 후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사망 추정 시간에 서너 시간의 오차가 생기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시신을 영안실로 옮긴 후인 지난달 14일 오후 8시 반경에야 직장온도 변화 검사를 했다. 범행 추정시간(오전 3시∼5시 40분)으로부터 15시간가량이 지난 뒤였다. 초동수사에서 중요한 단서를 놓쳤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강력수사통 박충근 前검사 “사망 추정 시간은 결정적 증거 안돼”
또 그는 “시신의 체온을 근거로 하는 사망 추정 시간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실내에서는 오차가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결정적 증거로 삼으면 수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사건은 ‘김기웅 순경 사건’과 비슷하지만 당시보다 객관적인 증거들이 더 잘 확보된 것 같다”고 밝혔다. 김기웅 순경 사건은 1992년 11월 김 순경이 함께 여관에 투숙한 애인의 살해범으로 몰렸다가 진범이 붙잡혀 누명을 벗은 사건. 당시 경찰은 부주의하게 범행 현장의 창문을 열어놓아 시신 온도가 떨어져 사망 추정 시간을 잘못 계산했고 이 때문에 김 순경이 범인으로 지목됐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경찰 “국과수 타살증거 보강했다” ▼
남편측 “강압수사 인권위 진정”
만삭 의사 부인 박모 씨(29)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마포경찰서는 피의자로 지목한 남편 A 씨(31)에 대해 21일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달 4일에도 A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사고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
한편 A 씨는 18일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경찰 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A 씨의 변호인은 “경찰이 영장실질심사의 개요를 설명하지 않거나 실질심사 일시, 장소를 고지해 주지 않는 등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억지로 혐의를 적용하려 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