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MB의 화법은 특이하다. 어떤 질문이든 주저 없이 답하고 핵심을 비켜가지 않는다. 답변은 알아듣기 쉽고 메시지가 분명하다. 대화 분위기를 부드럽게 끌고 가는 것도 남다른 강점이다. 서울시장일 때 잠재적 대선주자이던 그를 두 번 인터뷰하면서 이런 화법을 실감한 적이 있다. 행정중심도시에 대해 묻자 그는 반대한다고 전제하고 “공무원 1만2000명을 옮기려면 빌딩 2개만 있으면 충분한데 2200만 평의 땅을 살 필요가 뭐 있나”라고 했다. 일자리 문제에 대해선 “종업원 4∼10명을 고용하는 전국의 소상공인 280만 명에게 1명씩만 더 고용하게 지원하면 일자리가 200만 개 이상 늘어난다”는 해법을 냈다. 당시 다른 어떤 잠재주자들보다도 답변이 시원시원했고 명쾌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화법은 당장 듣기는 좋을지 몰라도 실수를 낳고 책잡힐 소지가 크다. 지나친 확신과 단순함 때문이다. 대선주자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면, 그리고 신문이 아니라 생중계되는 방송 회견이라면 그럴 위험성은 더 높다. 1일 방송좌담에서도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광고 로드중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충청권 조성과 관련해 “공약집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대통령답지 못한 발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07년 대선 공약집에 충청권 대신에 중부권이라고 쓰여 있지만 ‘충청권 조성 약속’을 부인하는 근거로는 궁색하다. 한나라당의 충청지역 정책공약집에는 더 분명하게 표현돼 있다. 설사 공약집에 없다 하더라도 말로 한 공약도 공약이다. 괜한 말로 부스럼을 만든 셈이다.
이 대통령도 이제 임기 4년차다. 군대로 치면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에 해당한다. 그런데 임기를 시작한 지 36개월째 되는 지금까지, 설명을 들어보면 이해는 되지만 ‘대한민국 지도자 MB’를 각인시킬 만큼 국민의 가슴을 적시거나 파고든 ‘MB 언어’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동안 58회 라디오 방송 연설을 한 것을 비롯해 국민을 향해 많은 말을 했지만 여전히 국민 사이에서 ‘소통 부족’ 얘기가 나오는 현실도 안타깝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