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도 시설도 포화… 버렸다, 가벼워졌다, 날았다
한화L&C의 프리미엄 마감재인 ‘칸스톤’이 쓰인 주방가구들. 경도가 높은 석영을 주원료로 해서 긁힘이나 파손 위험이 적다. 사진 제공 한화L&C
기로에 선 한화L&C는 비장한 각오로 구조조정을 결심했다. 수익에 도움이 되거나 성장가능성이 높은 제품만 골라 효율화작업을 벌였고 가능성이 없는 제품은 과감하게 생산을 중단했다. 강도 높은 효율화작업 등 일련의 경영혁신으로 위기를 극복한 결과 A제품 사업은 블루오션으로 탈바꿈했다. 또 월풀과 샤프, 미쓰비시전자, 하이얼 등 내로라하는 기업에 제품을 공급할 만큼 품질도 인정받았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70호(12월 1일자)는 제품 포트폴리오 구조조정 측면에서 좋은 성과를 낸 한화L&C의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기로에 선 성숙 사업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일선 영업부서는 매출액을 늘리려고만 했다. 단발성이나 소량 수주라도 무조건 받아들였다. 소량 제품도 생산해야 했기 때문에 공장 직원들의 초과근무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결국 이들의 초과근무수당은 전체 인건비의 5분의 1을 차지했다. 홍순유 한화L&C 데코영업팀장은 “당시엔 주문을 받는 즉시 매출을 올리려고 늘 다양한 재고를 많이 보유했고 당연히 재고 비용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또 보통 생산량이 늘어나면 고정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떨어진다. 하지만 한화L&C는 매출을 열심히 올리는데도 수익성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고정비가 늘었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당시 한화L&C는 다양한 아이템을 소량생산했기 때문에 대량생산에 따른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영업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 사생결단의 순간
결단의 시기가 다가왔다. 당시 3년간(2005∼2007년) 영업이익률이 3% 이하로 저조하지만 노력하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품목을 선정했다. 4개 품목이 나왔다. 이들 품목의 매출액은 2005년 1379억 원에서 2007년 1923억 원으로 급증했지만 영업이익은 29억 원에서 35억 원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생산직과 사무직 500여 명이 4개 품목에 매달렸지만 수익률은 지나치게 낮았다.
회사 전체의 수익을 갉아먹는 4개 품목의 존폐를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4개 품목의 매출액(1923억 원)이 전체의 20%나 됐기 때문이다.
한화L&C는 1년간 합리화작업을 해본 뒤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으면 사업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반발도 적지 않았다. 담당 임원이 총대를 멨다.
“자장면도 팔고 짬뽕도 파는 동네 중국집식의 영업을 하면 안 됩니다. 손님이 원하는 대로만 해주다 보면 여러 재료(재고)를 구비해야 합니다. 좋은 재료를 쓰기보다 맛을 좋게 하려고 인공조미료만 치게 되지요. 결국 맛도 나빠지고 손님 발길도 끊깁니다.”(신도호 한화L&C 장식자재사업부장)
○ 돈 안 되면 과감하게 생산 중단
DBR 그래픽
전략사업부는 수익성을 잣대로 제품을 네 가지 중 하나로 분류했다. 중소기업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필요 없는 형편없는 제품이 전체의 25%나 됐다. 이들 제품은 즉시 판매를 중단했다. 부가가치가 높지는 않지만 여전히 시장성이 있는 판단 유보 품목은 중소기업에 아웃소싱해서 가격을 낮췄다. 반면 한화L&C 고유의 기술로 만들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인 ‘캐시카우(Cash Cow)’ 및 ‘스타(Star)’ 제품은 판매량을 키워 전체 수익을 높였다. 이런 제품의 경우 거대 고객사라도 납품 가격을 올려주지 않으면 거래를 끊는 것까지 불사했다.
설비 및 운영 효율화에도 적극 나섰다. 저수익 제품 생산을 중단해 관련 설비 7개를 매각했고 남는 설비는 태양광 등 신성장산업 장비로 고쳐 썼다. 또 경남 진해공장을 충북 청원군의 부강공장으로 흡수해 물류비와 고정비를 아꼈다. 여유인력이 불가피하게 생겼지만 명예퇴직을 실시하지 않고 아웃소싱 회사나 부강공장에 재배치했다. 최웅진 한화L&C 사장은 “초과근무를 못해 수입이 줄어드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회사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수익을 높여야 한다는 데 공감했고 이는 혁신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 고객사 제품 개발부터 참여
또 캐시카우와 스타 제품을 팔 수 있는 글로벌 대기업을 위주로 마케팅을 강화했다. 과거에는 물건을 만들고 난 후에 고객을 찾았다. 하지만 구조조정 후에는 고객이 필요한 물건만 만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영업사원, 디자이너, 연구개발(R&D) 직원이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고객사의 신제품 개발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이에 따라 고객의 요구사항도 잘 반영할 수 있었다. 이런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평사원에게도 프로젝트 리더를 맡겨 조직의 민첩성을 높였다.
특히 당시 원-엔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했다. 이로 인해 한국 가전업체나 자동차업체의 원가 부담이 높아졌다. 이에 한화L&C는 마감재를 수입해 쓰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찾아가 국산 재료를 쓰면 원가 부담이 낮아진다고 설득했다. 한국의 대표 기업이 고객사가 되자 다른 곳에서도 주문이 밀려왔다.
○ 보이지 않는 비용과의 싸움
한화L&C는 보이지 않는 비용(invisible cost)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를 위해 ‘어음 제로, 100% 현금 수금’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실행했다. 과거에는 현금 수금 비율이 30∼40% 수준이었다. 어음은 180일 이후에나 회수했고 대손처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을 모질게 먹고 외상 고객사에 물건을 공급하지 않았다. 결국 현금 수금 비중을 90%로 높였다.
○ 합리화는 현재진행형
합리화작업을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났다. 판매량이 늘고 매출이익률도 높아졌다. 합리화작업 대상인 4개 품목의 영업이익률은 2007년 1.82%에서 2009년 8.32%로 뛰었다. 매출액은 같은 기간에 1923억 원에서 1960억 원으로 1.9% 오르는 데 그쳤다. 매출액은 제자리여도 영업이익률이 5배나 높아져 내실 있는 성장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김영한 한화L&C 재경 부문 상무는 “합리화작업의 성과가 좋아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며 “500개에 이르는 제품의 수익성을 매달 점검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제품의 생산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안태식 서울대 경영대학장 ahnts@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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