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31일이 되면 가수 이용의 히트곡 ‘잊혀진 계절’은 라디오 전파를 무려 100회 이상 탄다고 한다. 절절한 멜로디에 사랑하는 이와 헤어진 날을 추억하는 가사가 실린 노래라서 깊어가는 가을에 찾는 이가 더욱 많은 것 같다.
고독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제대로 만끽하고 싶은 이에게 필자가 말없이 한잔 건네고 싶은 와인이 있다. 이탈리아 동북부 베네토 지방의 발폴리첼라 지역에서 나는 명주로서 흔히 ‘아마로네’로 불리는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다.
발폴리첼라는 결코 무거운 와인은 아니지만 어떤 제법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레치오토 델라 발폴리첼라,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로 확대되며 발폴리첼라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이 두 와인에 쓰이는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는 일반 발폴리첼라에 쓰이는 포도보다 늦다. 이렇게 수확한 포도를 통풍이 잘되는 그늘진 곳에서 나무로 만든 발 위에 올려놓고 이듬해 1, 2월까지 말리는데 이 기간에 포도에서 40%가량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당도가 한껏 높아진다. 이 포도를 완전히 발효시켜 만든 와인이 아마로네이고, 중간에 일부러 발효를 멈춰 당분을 남긴 와인이 레치오토 델라 발폴리첼라다.
아마로네와 달리 레치오토 델라 발폴리첼라라는 긴 이름을 끝까지 불러야 하는 이유는 같은 베네토 지방에 레치오토 델라 소아베라는 또 다른 스위트 와인이 있기 때문이다. 레치오토는 베네토 지방의 방언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파시토라고 부른다. 비슷한 방식으로 만든 프랑스 와인으로는 뱅 드 파유가 있다.
반면 아마로네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비교할 대상이 없는 독보적인 와인이다. 색, 향, 맛 모두 깊고 풍부하며 복합적이다. 당분을 남기지 않고 모두 발효시켰음에도 두꺼운 타닌과 16∼17%를 넘나드는 높은 알코올 도수를 뚫고 달콤함이 느껴지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마로네는 진한 쓴맛의 다크초콜릿, 에스프레소, 블랙베리류로 만든 눅진한 잼, 말린 체리(발폴리첼라는 신선한 체리향이 두드러진다), 때로는 고춧가루 같은 매콤한 맛과 향까지 품고 있다. 그런 모습이 때로는 달콤했고, 때로는 쓰디썼던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절로 끄집어내고야 만다.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마시 캄포피오린 리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