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이여. 나는 최근 당신들을 겨냥한 우리 사회의 수많은 편견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무슬림을 곧 테러분자와 동일시하는 분위기는 당신들만큼이나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무슬림은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비난 대상이 되는 마지막 마이너리티다. 이 점 또한 용서를 바란다.
최근에 한 신문기사를 봤다. 메인 주에 있는 포틀랜드 프레스 헤럴드는 라마단의 종료를 알리며 이 지역 무슬림 신도 3000명이 기도하는 사진 기사를 1면에 보도했다. 미국의 독자들은 잔뜩 화를 냈다. 이날은 테러 발생일인 9월 11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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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감. 좋은 말이다. 하지만 법을 준수하는 착한 무슬림의 기사를 실으려면 우리가 꼭 테러리스트 얘기를 같이 언급하면서까지 ‘균형감각’을 찾아야 할까.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영국 여행을 보도할 때 우리가 균형감을 위해 꼭 아일랜드의 가톨릭 극렬분자를 거론해야 할까.
나는 오늘날의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가톨릭이나 모르몬 교도, 유대인 등에 대한 역사적인 편견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독자는 그것은 잘못된 비교라고 지적했다. 가톨릭과 유대인은 적어도 이 땅에 와서 많은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는 뜻이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진주만 공격 때 일본인들은 알 카에다가 했던 것보다 더 많은 미국인을 죽였다.
많은 미국인은 오사마 빈 라덴이 무슬림을 대표한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도 코란을 불태우려 했던 테리 존스 목사가 기독교인을 대변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아주 복잡해 그렇게 단순화하기 어렵다. 흑인이나 유대인 등 온갖 차별을 받아온 집단을 봐도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린 여전히 ‘무슬림’이라고 하면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이슬람의 정말 나쁜 면을 많이 봐왔다. 종교의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을 학교에서 내모는 사람들, 할례의식을 강요받는 여성들, 예멘이나 수단에서 총칼을 휘두르며 그것을 신의 명령을 수행한다고 포장하는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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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착한 영혼들이 알 카에다 테러분자들과 도매금으로 엮이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또 이들의 신성한 신앙이 조롱당하는 것도 참을 수 없다. 그들에게, 나는 감히 용서를 구한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