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 호아킨 산체스가 오른발 인사이드 슈팅을 날리는 순간 이운재는 미리 예측이라고 한 듯 자신의 왼쪽으로 몸을 날려 공을 쳐냈다. 그리고 두 손을 굳게 맞잡으며 승리를 확신했다. 2002년 6월 22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 한국이 세계 최강 스페인을 꺾고 4강 신화를 창출하는 순간 이운재는 그 중심에 있었다. 연장까지 120분의 사투를 끝낸 뒤 승부차기 3-3 상황에서 막아낸 그 한방에 온 국민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3년 짊어진 태극 짐을 벗다
골키퍼는 외롭다. 막아도 빛은 나지 않는다. 골을 먹고 패하기라도 하면 모든 비난이 쏟아진다. 이기든 지든 골을 먹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태극마크를 단 수문장은 스트레스가 더 하다.
●"떠날 때가 됐다"
이운재는 2007년 은퇴의 기로에 섰었다. 당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안컵 기간에 술을 마신게 뒤늦게 알려져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준결승에서 이라크에 지고 간신히 3위를 한 것에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는데 이운재를 포함한 일부 대표팀 주축 선수들이 음주를 한 것으로 밝혀지자 팬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공개 사과를 했지만 팬들의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당시 대표팀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지인들은 전한다.
하지만 K리그에 집중하며 반성했고 1년간의 대표팀 자격정지 뒤 허정무 감독이 다시 부르자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골문을 지켰다. 남아공 월드컵 출전을 놓고도 "해줄 게 없을 것 같다"며 고민을 했지만 마지막으로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떠났다. 결국 단 한 경기 뛰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운재는 "지금이 떠날 시기인 것 같다"며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 할 때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김)병지형"
●K리그 최고 승부차기 승률은 계속 된다
청주 청남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이운재는 청주상고 1학년 때 골키퍼로 전향한 뒤 지금까지 지나가는 차량 번호판을 외우는 습관이 있다. 빠르게 달려가는 자동차 번호판을 외우는 건 골키퍼에게 훌륭한 상환 판단 훈련이다.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운재는 역대 K리그 승부차기 승부에서 11승 1패를 기록해 승부차기 승률이 91.7%에 달한다. K리그 최고 승률이다. 이운재는 K리그 12차례 승부차기에서 총 58회의 승부킥 방어에 나섰는데 상대 실축과 선방을 합쳐 26개의 킥을 막아냈다. 승부차기 세이브율은 44.82%로 K리그 1위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