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교과목 통폐합’시행 앞두고 뒤숭숭한 교단
서울 A사립고에서 윤리 교사로 일하는 김모 씨(28·여)는 최근 몰래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 윤리 과목이 내년부터 학교의 선택과목에서 빠지기 때문에 영어 교사로의 ‘전환’을 준비 중이다. 학교에서는 김 씨에게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가르치는 ‘순회교사’를 선택하든지, 아니면 교육청 연수를 받고 전공과목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그는 ‘전환’을 택했다. 김 씨는 “대학 시절 영어교육학을 복수전공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암담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사회과목 통폐합을 앞두고 관련 교사들 중에 신분 불안 때문에 ‘전환’을 준비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11학년도부터 전국 고교에 적용되는 ‘2009 개정 교육과정(미래형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현재 13개 과목인 사회영역 과목이 9개로 통폐합된다. 교과부 관계자는 “지나치게 세분된 교과목 수를 줄이는 것”이라며 “전체 수업 시간은 예전과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교에서 과목 수나 수업시간을 현행보다 20%가량 줄일 수 있어 남는 교사들이 생기기 때문에 불안감이 크다. 공립보다는 사립학교 교사들의 불안이 더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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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C고교 교사 박모 씨(35)는 “사립학교는 교사의 전공에 관계없이 교과과정 개편에 따라 담당 과목을 바꾸는 사례가 많다”며 “이번 개편으로 사회문화 과목 교사가 영어를 가르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과목이 바뀌는 교사들의 ‘전문성’도 문제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방학 동안 480시간의 연수만 받으면 전공과목을 바꿀 수 있다. 6년 전 학교의 선택과목 변경으로 독일어에서 중국어로 담당 과목을 바꾼 정모 교사(46)는 “얼마간의 연수 이후 가르치는 과목을 바꾸는 것은 교사 입장에서도 엄청난 스트레스”라며 “솔직히 지금도 중국어에 자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교과부 관계자는 “고교 과목 선택 자체가 학교 자율이어서 학교에 따라 특정과목의 교사 수가 유동적일 수 있다”며 “남는 교사는 과목 전환이나 진로적성상담교사 등으로 활용하면 교과체계가 안정되는 2013년 이후에는 문제점들이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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