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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 이번엔 우승 교향곡 지휘?

입력 | 2010-06-29 03:00:00

아르헨 순항으로 지도력 인정받는 마라도나

현역 땐 ‘축구의 신’ 명성
은퇴 후 좌충우돌 기행 화제

사령탑 초기 자질시비 딛고
3번째 트로피 안을지 관심




축구 하나로 신(神)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있다. 세르비아 출신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은 2008년 그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최근 국내에서도 개봉됐는데 ‘축구의 신’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주인공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이끌고 있는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50·사진)이다.

마라도나 하면 떠오르는 게 ‘신의 손’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그는 공중 볼을 손으로 툭 쳐서 잉글랜드 골문 안으로 집어넣었다. 당시 그는 “내 머리의 일부와 신의 손 일부로 골을 넣었다”고 말했고 이후 신의 손은 그의 수식어가 됐다.

그렇지만 그는 곧 이어 5명의 수비수 사이로 60m 정도를 질주하는 신기의 드리블을 선보이며 골키퍼까지 제치고 2번째 골을 넣었다. 이 골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2002년 온라인 투표로 뽑은 20세기 최고의 골이었다. 멕시코 월드컵에서 5골과 5어시스트를 기록한 마라도나는 결국 아르헨티나의 우승까지 이끌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올해. 마라도나는 유니폼 대신 말끔한 신사복 차림으로 남아공 월드컵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남미 예선을 가까스로 통과한 팀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아르헨티나는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전 4-1 대승을 포함해 조별리그 3경기에서 모두 이겼고, 멕시코와의 16강전에서도 3-1로 완승했다. 운도 기가 막히게 따른다. 한국전에서 나온 곤살로 이과인의 3번째 골은 경기 후 심판이 오심이라고 인정한 오프사이드 골이었다. 멕시코와의 16강전에서 카를로스 테베스가 넣은 첫 골 역시 명백한 오프사이드였지만 심판의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다.

운이 따라준 것은 분명하지만 2008년 처음 지휘봉을 잡은 초보 사령탑 마라도나의 지도력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마라도나는 깊이와 다양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갖은 기행으로 구설에 올랐다.

기자들에게 공기총을 쏴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고 코카인 중독으로 사경을 헤매다 위 절제 수술도 받았다. 좌파 운동가로서 정치 무대에도 자주 이름을 올렸다. 오른팔에는 체 게바라, 왼 다리에는 피델 카스트로 쿠바 지도자의 초상을 문신으로 새겨 넣었다. 2005년에는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항의로 ‘스톱 부시’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었다. 올해 초엔 애견에게 얼굴을 물려 10바늘 이상을 꿰맸고, 탈세 혐의로 이탈리아에서 빼앗긴 귀고리가 경매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거침없는 언변과 선수들에 대한 진한 애정 표현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한때 ‘아르헨티나의 유일한 약점은 감독’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정작 선수들은 마라도나에게 깊은 신뢰를 나타내고 있다. 미드필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카메라 앞에서는 독설을 하지만 경기장 뒤에서는 매우 다정한 사람이다. 카메라 밖에서 그는 항상 선수단을 감싸 안는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마라도나는 실제로 그를 섬기는 사람들이 있는 정말 ‘신’이기도 하다. 그를 신봉하는 신흥 종교 ‘마라도나교’는 그의 38번째 생일인 1998년 10월 30일 0시 15분에 창시돼 전 세계 60여 개국에 10만 명 정도의 신도가 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는 2003년에 마라도나 교회까지 세워졌다.

마라도나는 이번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하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발가벗고 질주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르헨티나의 우승이 실현된다면 ‘신’이 나체로 도심을 질주하는 희대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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