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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25·AS모나코)의 포효가 더반 모저스 마비다 스타디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볼이 골문을 통과해 그물을 흔드는 것을 확인한 뒤 환호하는 동료들을 뒤로 한 채 맘껏 울부짖으며 가슴 속 응어리들을 모두 토해냈다.
결국 그의 발끝에서 한국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행이 결정됐다. 박주영은 23일(한국시간) 나이지리아와의 2010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B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후반 4분 오른발 프리킥으로 추가골을 뽑아냈다.
무려 4년을 기다린 순간이었다. 2006독일월드컵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축구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선발 출전해 월드컵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별 다른 활약 없이 후반 21분 교체 아웃됐고 한국은 0-2로 패하며 거의 다 잡았던 16강 티켓을 눈앞에서 놓쳤다.
이번 대회에서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리스와의 1차전에서는 두 차례 결정적인 슛이 골문을 외면했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자책골로 대패의 빌미를 제공했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박주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허정무호 부동의 스트라이커. 마지막 순간을 해결해줘야 하는 운명이었다. 아르헨티나 전 바로 다음날 훈련장에 나와 “실수는 인정한다. 나이지리아 전에서는 내가 해결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날도 전반에 몇 차례 기회가 있었다.
나이지리아 킬러로서의 면모도 다시 한 번 발휘했다. 5년 전인 2005년. 박주영은 국제축구연맹(FIFA) U-20 청소년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나이지리아를 만나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종료 1분 전 오른발 프리킥 동점골을 터뜨렸다. 패색이 짙던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으며 극적인 2-1 역전승의 디딤돌을 놨다. 아프리카 맹주 나이지리아는 이번에 또 다시 ‘천적’을 만나 땅을 쳤다.
1994미국월드컵에서 여러 차례 골 찬스를 놓치며 축구 팬들의 ‘역적’이 됐다가 2002한일월드컵 폴란드와의 1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부활한 황선홍 부산 감독은 “월드컵의 한은 월드컵에서 밖에 풀 수 없다. 다른 대회에서 10골을 넣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드디어 4년 묵은 박주영의 한이 풀렸다. 이제 더 높이 승천하는 일만 남았다.
16강에 오른 한국팀의 공격력에 더욱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