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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만드는 문화 선진국]미국은 예술기부 천국

입력 | 2010-06-17 03:00:00

개인 현금기부-자원봉사
美 예술단체들의 버팀목

뉴욕필에 매년 거액 후원
1000명 개인-기업 밑받침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입장료대신 기부금 받아

애리조나주서 기부하면
100% 소득공제혜택 지원




세계 4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장객에게 기부금을 받고 개인회원으로 등록하면 특별 전시를 미리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개인 참여 제도를 갖추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 뉴저지 주 북부 웨스트 뉴욕에 사는 리처드 페이지 씨는 3년 전인 2007년부터 뉴욕 맨해튼 트랜스포트 극장 이사회에서 일하고 있다. 2001년 미국의 젊은 극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이 극장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비영리 극장이다. 뉴욕대 병원이 직장인 페이지 씨는 바쁜 직장생활 틈틈이 트랜스포트 극장을 돕기 위해 무보수로 일해 왔다.》
페이지 씨는 “중세에 다빈치 같은 예술가들이 메디치 가문 등 부유한 이들의 후원을 받아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술 발전을 위해서는 일반인의 기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10년 전부터 여러 비영리 예술재단을 위해 자원봉사를 해왔다”고 말했다.

건국 이후부터 개인의 자유를 강조해온 미국은 사회와 예술계의 협력에서 국가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페이지 씨처럼 예술 분야의 발전을 위해 돈이나 시간, 재능 등을 기부하는 개인과 수익금 일부를 각종 예술재단에 기부하는 기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적 교향악단인 뉴욕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매년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의 거액을 기부하는 1000여 명의 ‘후원자’ 또는 ‘후원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 후원자들은 티켓 판매금액만으로 운영될 수 없는 뉴욕필하모니가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세계 4대 미술관 중 하나로 불리는 뉴욕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개인이나 기업의 기부금으로 유지된다. 이 미술관은 정해진 입장료가 없다. 그 대신 관람객들이 입장할 때 내는 5∼20달러 정도의 기부금이 330만 점의 소장품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의 일부로 사용된다.

예술계에 대한 개인들의 공헌이 돈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정보기술(IT), 마케팅, 기획, 재무, 법무 등 다양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비영리 예술재단을 위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수년간 일하는 ‘재능 기부’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비영리 예술재단에 대한 개인과 기업의 협력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법인 미국 아츠앤드비즈니스협의회(ABC) 뉴욕지부에 따르면 뉴욕지역에서 ABC를 통해 자신들의 재능을 예술재단에 기부하기 위해 문의하는 사람 수가 2008년 이후 두 배로 늘어났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동아일보 자료 사진

기업의 기부활동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다소 줄고 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예술재단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퍼시픽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티켓 판매 수익이 줄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현지 지방은행인 파머스 앤드 머천트 은행이 거액을 기부하면서 해체 위기를 모면했다. 이 악단의 연간 예산은 1750만 달러(약 210억 원)인데 이 중 200만 달러를 기업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편의점 체인인 타깃은 매년 세전이익의 5%를 퍼시픽 심포니 같은 예술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기업이나 개인의 예술 협력활동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대신 기부금에 대한 폭넓은 세제 혜택으로 이를 지원하고 있다. 혜택의 범위와 규모는 주마다 차이가 있다. 애리조나 주의 경우 개인과 기업이 예술재단 등에 기부한 금액의 100%(한도액은 개인의 경우 연간 소득금액의 50%, 기업은 소득금액의 10%)에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정부-의회에 ‘기부업체 세제혜택 확대’ 로비도”

윌 와이스 ABC뉴욕지부 회장

비영리 예술재단에 대한 개인과 기업의 협력을 연결하는 미국 아츠앤드비즈니스협의회(ABC) 뉴욕지부의 윌 와이스 회장(사진)은 “풍요한 예술환경을 낳기 위해 개인과 기업이 다양한 형태로 협력하는 문화가 미국에 정착돼 있다”고 말했다.

―ABC에 대해 소개한다면….

“ABC는 외부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비영리 예술재단을 지원하기 위해 1965년 창립됐다.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마이애미 시카고 신시내티 등 10개 도시에 지부를 두고 있다. 매년 한 차례 모든 지부 임직원이 모여 각자 활동을 소개하고 노하우를 공유한다.”

―어떤 활동을 하나.

“예술재단 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개인과 기업을 찾아 예술재단과 연결시킨다. 예술재단도 기업처럼 마케팅 인사 기획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필요한데 예산의 제약 때문에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몇 시간에서 몇 개월 동안 무보수로 예술재단을 위해 일하도록 한다. 또 예술재단의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마케팅 기회를 찾는 기업을 발굴해 예술재단과 협력하도록 한다.”

―기업과 예술계의 협력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세제 혜택이 중요하다. ABC는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이를 위해 로비활동을 펼친다. 한편으로 기업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훌륭한 그림을 많이 갖고 있는 미술관이라고 해서 돈을 기부하지 않는다. 여기에 돈을 기부해 자사의 기업활동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한다.”

―개인이 예술계 활동에 협력하도록 하려면….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단순히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예술 분야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도록 하면 그만큼 예술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고 더 많을 것을 내놓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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