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포용과 개방정책을 바탕으로 제국으로 발전했다. 속주 주민에게 시민권을 줬고 속주 출신 황제도 나왔다. 그러나 로마 공동체가 지향하는 기본 가치를 인정할 때만 시민권이 부여됐다. 제2차 포에니전쟁 때 로마는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에게 연전연패하면서 멸망의 위기에까지 몰렸지만 결국 승리했다. 외적과 맞설 때는 일치단결해 총력전에 나선 로마와, 한니발의 승리를 질시하는 지도층의 내분에 휩싸인 카르타고의 차이가 최종적 승패를 갈랐다.
국가 운영과 기업 경영에서 ‘열린 마음’은 덕목으로 꼽힌다. 하지만 원칙이 무너지면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사장은 저서 ‘CEO, 역사에게 묻다’에서 “공동체의 통합과 번영을 위한 기본 가치에 동의하지 않은 채 분열을 조장하고 번영을 해치는 집단은 개방과 포용,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특히 위기가 닥쳤을 때 외부의 적과 내통해 공동체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을 방치하는 것은 파멸을 부르는 지름길이다.
스탈린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숨진 2000만 명을 빼더라도 약 1000만 명의 소련 국민을 희생시켰다. 영국 좌파 지식인 웨브 부부와 버나드 쇼는 이런 스탈린 체제를 찬양했다. 프랑스의 사르트르는 강제수용소의 실체를 확인하고도 소련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레닌은 서구 좌파 지식인들을 공산혁명 과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쓸모 있는 바보들’이라고 조롱했다. 우리 내부 친북세력에 대한 북한의 시각도 비슷할 것 같다. 반면 대다수 한국인에게 그들은 ‘쓸모 있는 바보들’이 아니라 ‘쓸모없는 바보들’ 나아가 ‘위험한 바보들’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고 권력쟁취를 위한 정치적 갈등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우리의 생명과 자유, 재산과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세력까지 끌어안고 갈 수는 없다. 과거 서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치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공무원 임용을 금지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바라는 국민이라면 우리 사회의 ‘쓸모없는 바보들’을 무력화, 고립화시키는 일에 동참할 의무가 있다. 그들의 허위의식과 기만을 낱낱이 파헤쳐 주변에 알려야 한다. 친북세력은 아니지만 막연히 동조했던 일부 국민도 이제는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함께 엄중히 물어야 한다. “당신의 자식이나 형제자매가 천안함에서 희생됐더라도 그렇게 주장하겠느냐”고.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