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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운 피가 버려졌다. 대한적십자사가 4, 5월 부산 등 4개 지역 군부대에서 888명의 군인에게 채혈한 혈액 총 2417단위(Unit·혈액 보관단위) 가운데 1152단위가 이미 폐기됐거나 폐기될 예정이다. 혈소판, 전혈 등 혈액 종류에 따라 보통 1단위가 250∼500mL에 달하므로 최소 288L가 버려진 셈이다.
이는 MMR백신(홍역·유행성 이하선염·풍진 혼합백신) 예방접종을 맞은 군부대원을 대상으로 4∼15일 만에 헌혈을 했기 때문이다. MMR백신 접종자의 혈액을 수혈했을 경우 발진 등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이 수혈자에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홍역과 유행성 이하선염은 접종 후 2주간, 풍진은 1개월간 채혈을 금지한다.
1134단위는 이미 수혈이 이뤄졌다. 보건복지부는 “문제의 혈액을 수혈한 519명에 대해 추적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전문가들은 위험이 낮을 것으로 보지만 혹시나 면역 억제자나 임신부 등 고위험군의 이상반응이 있을까 확인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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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사는 “2008년 혈액관리법 개정 때 백신은 금지 약물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제도상 미비한 점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 여부는 간단한 문진만으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단체로 헌혈하는 군부대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사전 검증을 확실히 했어야 했다.
신종 인플루엔자A(H1N1)가 한창 유행하던 지난해 10월. 적십자사와 보건복지부는 전국적으로 혈액 보유량이 3일분밖에 남지 않았다며 헌혈 참여를 독려하고 나섰다. 그 덕분일까, 지난해 헌혈자와 헌혈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헌혈자는 모두 256만9954명으로 2008년보다 9.5% 증가했다.
적십자사가 헌혈 목표량을 채우는 데만 급급해선 안 된다. 헌혈과 관련한 안전성부터 확보하고 부실한 혈액 관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힘들게 확보한 피를 사전 점검 부족으로 버려야 한다는 소식이 안타깝다.
우경임 교육복지부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