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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우경임]아까운 피 쏟아버린 적십자사의 허술한 채혈

입력 | 2010-05-20 03:00:00


아까운 피가 버려졌다. 대한적십자사가 4, 5월 부산 등 4개 지역 군부대에서 888명의 군인에게 채혈한 혈액 총 2417단위(Unit·혈액 보관단위) 가운데 1152단위가 이미 폐기됐거나 폐기될 예정이다. 혈소판, 전혈 등 혈액 종류에 따라 보통 1단위가 250∼500mL에 달하므로 최소 288L가 버려진 셈이다.

이는 MMR백신(홍역·유행성 이하선염·풍진 혼합백신) 예방접종을 맞은 군부대원을 대상으로 4∼15일 만에 헌혈을 했기 때문이다. MMR백신 접종자의 혈액을 수혈했을 경우 발진 등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이 수혈자에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홍역과 유행성 이하선염은 접종 후 2주간, 풍진은 1개월간 채혈을 금지한다.

1134단위는 이미 수혈이 이뤄졌다. 보건복지부는 “문제의 혈액을 수혈한 519명에 대해 추적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전문가들은 위험이 낮을 것으로 보지만 혹시나 면역 억제자나 임신부 등 고위험군의 이상반응이 있을까 확인하기 위해서다.

대한적십자사는 1958년 국립혈액원을 인수하며 혈액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로 52년째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했다. 단체 헌혈 시 채혈 금지 대상을 가려내는 기본문진에서 예방접종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 A형간염, 말라리아, 해외여행 여부는 의무사항이지만 예방접종은 선택사항이다. 해당 군부대는 보통 볼거리라 불리는 유행성 이하선염이 번지기 시작해 단체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예방접종 직후 헌혈한 사실은 다른 군부대를 방문했던 의사가 문진을 하던 중에 밝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적십자사는 “2008년 혈액관리법 개정 때 백신은 금지 약물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제도상 미비한 점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 여부는 간단한 문진만으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단체로 헌혈하는 군부대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사전 검증을 확실히 했어야 했다.

신종 인플루엔자A(H1N1)가 한창 유행하던 지난해 10월. 적십자사와 보건복지부는 전국적으로 혈액 보유량이 3일분밖에 남지 않았다며 헌혈 참여를 독려하고 나섰다. 그 덕분일까, 지난해 헌혈자와 헌혈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헌혈자는 모두 256만9954명으로 2008년보다 9.5% 증가했다.

적십자사가 헌혈 목표량을 채우는 데만 급급해선 안 된다. 헌혈과 관련한 안전성부터 확보하고 부실한 혈액 관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힘들게 확보한 피를 사전 점검 부족으로 버려야 한다는 소식이 안타깝다.

우경임 교육복지부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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