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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9억 원 수사’는 5만 달러 부실수사와 달라야

입력 | 2010-04-10 03:00:00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는 어제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줬다는 진술은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곽 씨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기억과 다른 진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조사시간(심야조사)이 진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곽 씨 진술의 신빙성과 자유의사에 의한 임의성(任意性)을 모두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곽 씨는 검찰에선 “봉투 2개에 2만 달러, 3만 달러를 넣어 (직접)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공판에서는 “식사를 마치고 의자에 5만 달러가 든 돈봉투 2개를 놓고 왔는데 한 전 총리에게 ‘죄송합니다’라고 했기 때문에 (돈 놓는 걸) 봤을 것”이라고 진술을 바꿨다. 검찰은 법원의 권고에 따라 공소장을 변경했지만, 곽 씨의 오락가락하는 진술 외에는 다른 보강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검찰이 상급심에 가서 1심 판결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를 내놓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증거만으로는 유죄판결을 내리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을 재판부가 한 것이다. 5만 달러의 자금 출처에 대해서도 검찰은 곽 씨가 그 정도 돈은 항상 보유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곽 씨의 형편이 어려웠던 점을 들어 자금 출처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1심 선고 공판 하루 전날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한 전 총리가 9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5만 달러 사건 재판의 무죄 난관을 우회 돌파하기 위한 ‘별건(別件)수사’라느니 ‘신건(新件)수사’라느니 하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의혹이 불거진 이상 진상을 규명하는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이번에도 5만 달러 수사처럼 부실수사 논란을 부른다면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키고 불필요한 정치적 의혹만 증폭시키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선고 결과와 9억 원 수사가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에 관해 전망이 분분하지만, 수사와 재판 그리고 선거는 별개의 문제다. 한 전 총리의 5만 달러와 9억 원 수수 여부는 법리와 증거에 따라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면 된다. 이것을 선거를 혼탁하게 하는 정쟁의 소재로 이용해선 안 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수사나 재판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검찰과 사법부를 흔드는 발언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